도서출판여이연/서평 썸네일형 리스트형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프레시안 서평 '미친' 세상과 맞서는 채식주의자 뱀파이어가 뜬다 [철학자의 서재] 임옥희의 뱀파이어는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이다. 인간과 괴물의 잡종으로 만들어진 이 상상물은 천성적으로 생명의 피를 빨아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데, 그 자가 채식을 한다는 것은 곧 자기 부정인 셈이다. 다시 말해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는 형용모순이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이 책 (임옥희 지음, 도서출판 여이연 펴냄)은 '폭력의 시대, 타자와 공존하기'라는 부제가 없었다면 호러 소설이거나 요즘 드라마·영화로 미국 시장을 강타하는 '뱀파이어'의 한 계보로 여김직 하다. 구미호, 강시, 도깨비를 연상시키는 뱀파이어는 오랜 세월을 두고 다양한 버전으로 재생되어 왔다. 뱀파이어를 불러내는 인간 사회의 심리적 사회적 욕망을 분석한 연구.. 더보기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문영희) [서평] 언어로 만든 집은 다시 죽지 않는다 | 문영희 (월독)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저/역 을유문화사 (2010) “이제는 해체되고 없는 집을 애도하는 진혼곡” 월요일 독서클럽이 예니 에르펜베크의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를 읽기로 결정한 것은 어느 건물의 잔디마당에서였다. 나무 잎사귀들의 여린 초록빛이 몹시도 반들거리며 살랑대는 날이었다. 대지에서는 약간의 온기가 올라오고 하늘은 모처럼 푸르렀다. 상큼한 바람과 태양을 살짝 가린 비치파라솔과 커피의 향기, 끝도 없이 수다를 떠는 것처럼 보이는 책 읽는 여자들… 그날의 독서토론은 『숨그네』와 『저지대』에 관한 것이었다. 헤르타 뮐러의, 시적 울림이 가득한 작품에 고양된 우리들이 차기 토론작으로 선택한 것이 예니 에르펜베크의 새 소설이다. 두 작가 모두 사.. 더보기 시간이 앞으로 흐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최인자) [서평] 시간이 앞으로 흐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 최인자 빌러비드 저/ 역들녘 (2003) “되돌아온 과거의 무언가를 맞이할 것인가, 내쫓을 것인가” 월요일 독서클럽에서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Beloved』를 읽은 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토니 모리슨은 물론 저명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고, 『빌러비드』라면 그녀의 대표작이자(토니 모리슨은 이 작품으로 198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두말할 나위 없는 미국 문학의 고전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을 읽고 난 우리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아니, 넌더리를 내거나 살짝 몸서리를 치고는 얼른 물러섰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모든 것이 지나친 듯했다. 쏟아지듯 넘치는 말들, 찢기고 부풀어 오른 살점, 빼앗기고 잃어버린 몸들, 터져 나오거나 혹은 삼켜버린 비명들,.. 더보기 식인주체의 아이러니칼한 윤리학 (타라) 식인주체의 아이러니칼한 윤리학 (임옥희,『채식주의자 뱀파이어- 폭력의 시대, 타자와 공존하기』, 여이연, 2010) 수상한 시절을 살고 있는 나와 우리 앞에 우리가 가진 불안감을 언어화한 의미심장한 말들이 들려왔다. 임옥희 선생님의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2010년의 현재는 모든 가치가 화폐로 환산되며 정치적 구호나 차이까지 미학화되어 팔려나가는 신자유주의시대이자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고 있다는 환상의 “부르주아 독재(13)”시대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유롭게 선출한 대통령은 강을 파고 2년 전 촛불시위를 반성하라고 호령하고, 욕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지방선거보다는 축구나 천안함 침몰 사태의 진실과 빨갱이에 대해 말한다. 이러한 시대를 저자는 ‘폭력의 시대’라고 말한다. 폭력.. 더보기 임옥희 <말은 사물에게 건네는 시간의 선물이다> 헤르타 뮐러의 요즘 읽었던 상당수 소설들은 소설적인 짜임새보다는 그저 이야기로 넘쳐났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 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에 닿았다. 많은 소설들이 이해하기 힘든 분노, 과도한 구라, 지나친 자기연민을 여과없이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분량은 왜 그렇게 엄청난지. 수다로 끓어 넘치는 소설을 읽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정신없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생각할 여백을 주지 않았다. 이야기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맬 필요도 없었다. 작가가 제시하는 이야기의 실타래만 따라가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플롯도, 상징도, 형식도 없었다. 아무리 소비가 미덕인 사회라고는 하지만, 작가마저 자기 존재의 처소인 언어들을 낭비하고 남용하다가 언어의 쓰레기 더미로 배설해버려도 되는 것일까. 그것은 언어의 향.. 더보기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한겨레21 신간 소개 임옥희 지음, 여이연(02-763-2825) 펴냄, 2만원 페미니즘은 자신의 소멸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여성 억압이 없는 때가 도래해 페미니즘이 용도폐기되는 게 목표인 것이다. 요즘 여성가족부, 여성학과, 여성단체 등이 해체되거나 해체하자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아무도 이를 애도하지 않는다. 목표하던 자기소멸의 때가 왔기 때문인가. 저자는 애도 없는 이유를 ‘부르주아 독재’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고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페미니즘 내부의 자기성찰을 제안한다. 더보기 최인자 <서울의 눈으로 터키의 눈을 알 수 있으려나> 서울의 눈으로 터키의 눈을 알 수 있으려나 [2010.04.02 제804호] [월요일 독서클럽] 철없는 눈을 보며 떠올린 파무크의 , 낭만주의자는 갑자기 떠맡은 정치적 소임을 잘 수행할까 때아니게 흥청망청 쏟아지는 하얀 눈에 깜박 홀려서 오르한 파무크의 (민음사 펴냄)을 떠올린 건, 물론 나의 실수였다. 그 연상의 철없음이란, ‘발리 상표가 붙은’ 여행 가방을 들고 독일 백화점에서 산 두툼한 털코트를 입은 채, 눈에 대한 순수한 감정을 좇아 터키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전통색이 강한 변방의 도시 카르스를 찾아간 주인공의 행적과 맞먹는다. 이 책에서 아무리 온 세상의 빈곤을 덮으려는 듯 끊임없이 눈이 내린다 해도, 아무리 그 눈이 ‘평생 한 번 우리의 꿈속에서도’ 내리는 눈처럼 신비롭다 해도, 이슬람 원리주의.. 더보기 채윤정 <책을 읽고 나는 타자에게 연루되었다> 책을 읽고, 나는 타자에게 연루되었다 [2010.04.16 제806호] [월요일 독서클럽] 조용한 독서를 ‘사회적 행위’의 느낌으로 이끄는 존 쿠체의 소설, 노인의 은밀한 열망을 그린 소설을 읽나요? 사람들에게 물으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바빠 죽겠는데 그런 걸 읽나.” “독서클럽까지 결성해 소설을 읽다니 노력이 가상하다.” 이런 대답을 들을 때면 소설을 즐겨 읽는 나는 사회의 잉여 존재가 된 기분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론 상대방에게 이런 걸 묻고 싶어진다. 혹시 당신은 뭔가를 보존하고 싶어하는 편인가요? 예컨대, 자신에 대한 믿음들. 이렇게 묻는 건, 소설을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질문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은 모두 내가 몰랐던 남의 이야기, 옆집의 이웃부터 다른 성·인종·계급·민족의 이야기였다.. 더보기 이전 1 2 3 4 5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