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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여이연/여/성이론

여성이론 통권 제32호

발행일: 2015.05.17 저자: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편집부
 
 책 소개

최근 여성혐오를 공적인 공간에서 여과 없이 노출했던 개그맨(들)이 대중의 거센 비판을 받으며 방송 출연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두 번 읽기도, 입에 담기조차 싫을 정도로 저급하기 짝이 없는 말을 웃음을 위해 했다는 무책임한 변명을 듣자니 가부장제의 공고화를 위해 여성을 마녀로 호명하여 불길로 희생시켰던 그 ‘야만적’이라는 16세기에서 여성의 위치가 얼마나 벗어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공격의 내용이 다를 뿐, 여성은 여전히 남성 폭력성의 가장 손쉬운 대상이다. 그렇게 여성의 시간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한편 된장녀, 김치녀…각종의 ‘녀’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여성에 대한 공격과 조롱의 대상으로 활용되고 있고,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대표적인 여성혐오사이트, 일베는 점점 더 영향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왜 이처럼 여성에 대한 혐오가 광범위한 사회적 파장을 형성하고 소구력을 갖는 것일까? 이에 대한 여러 진단이 있지만 여성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남성들의 두려움이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을 가져와보자. 과연 남성들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한국여성의 지위가 상향되고, 삶의 내용에 변화가 일어났을까?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GGI)에 따르면, 2014년 142개국 중 117위로 최저 수준을 보이고,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2.5%(참고로 뉴질랜드는 95.8%)로 OECD 국가 중 최악의 격차를 수년째 유지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비정규직은 주로 여성에게 할당되고, 알파걸 담론과는 달리 전통적인 돌봄 노동을 해결하지 못해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여성들이 재가족화되어 고학력 여성의 취업률은 최하위를 맴돌고 있다. 몇 가지 사실만 간단히 살펴봐도 여성은 아직 온전한 시민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한다.

 

많은 남자들이 우리 사회 여성들의 지위가 예전 같지 않다고, 여성들의 발언권이 세지고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남자가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은 착시에 불과하다. 사적 영역에서 여성들의 발언권이 높아진 것을 공적 영역에서 여성들의 발언권 강화나 지위향상과 등치한 오류이다. 이런 오도가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이번 <여/성이론> 32호에서는 여성혐오 뿐 아니라 지난해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 일어난 성소수자 차별, 일베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폭식 테러 등 혐오에 기반한 공격과 혐오발화가 무차별적으로 발생하고 광포해지기까지 하는 사회현상을 주목하여 ‘혐오의 시대(Era of Disgust)’로 특집을 잡고 혐오 현상의 내용들을 진단하고 저항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하였다. 특집을 위해 손희정은 우리 시대 혐오의 시공간적 특수성을 고찰하고 혐오를 어떻게 사유할 것이며 거기에 또 페미니즘은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 밑그림을 제시한다. 황미요조는 문화영역의 소비와 여성혐오가 어떻게 매개되고 있는지 관련성을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조혜영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와 연관되는 내용이어서 서로 연결하여 보면 좋을 것 같다. 조주영은 표현의 자유가 관용에 기반하여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혐오발언에 대응할 수 있는 길을 열어보인다. 이와 달리 유민석은 퀴어의 말에 대한 억압은 결국 시민권을 중단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동성애자를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주장하고 있어 조주영의 논문과 차이를 보인다. 이 두 편의 글이 어떤 점에서 갈라지는지 서로 비교하여 쟁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번 호의 문화/텍스트에는 시의성과 연결되는 글 두 편이 실렸다. 세월호 참사, 애도, 혐오를 아우를 수 있는 논문, 「이들은 왜 죄책감에 사로잡혔나: <괜찮아 사랑이야>와 <하트 투 하트>」에서 신주진은 세월호 이후 시대의 병증을 드러내는 드라마가 담고 있는 함의를 페미니스트 정신분석가 줄리엣 미첼의 동기 관계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미첼은 프로이트나 라캉과 달리 부모 자식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동기간의 수평적 계열로 분석축을 이동시키며 그것으로 타자성을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이러한 미첼의 분석지점의 이동은 타자에 대한 윤리가 절실한 우리의 시대적 현실과 맞닿는 점이 있어 독자들에게 윤리성에 대해 새로운 사유의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성노동’을 공론에 부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연극 <똑바로 나를 보라>에 대한 평을 해준 김슬기의 글은 ‘성매매특별법’ 위헌 여부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과 관련하여 여러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난 해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했던 세월호 참사는 1년이 지났지만 미해결의 상태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1주년을 앞두고 국가는 보상비를 언급하면서 진실규명을 원하는 가족들의 투쟁을 돈의 문제로 치환하여 오염시키고 유족들은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다. 꽃 같은 아이들이 스러져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우리 앞에 ‘잊지 말자’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일종의 윤리적 의무로 제기되었던 요구이다. 주제 서평에서 김현미는 유가족의 애도적 증언집,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통해 이 기억의 의무를 환기시켜주고 있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담론 경합의 현장에서 유가족이 들려주는 말들, 그들의 증언은 기억의 정치성을 넘어서는 윤리적 의미를 보유함을 강조하는데, 『여/성이론』에서 이들의 말을 불러오는 것은 서평을 넘어 독자들에게 기억하는 의무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작업이 풍찬노숙의 고단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유족들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 소개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 쓰고 대안문화를 만들며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로운 시대의 이론적 패러다임을 만들어 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연구자들의 모임이다.여성문화이론연구소
우리는 역사를 다시 쓰고 대안 문화를 만들며 새로운 이론을 생산하고자 한다. 
여성이라는 현재의 정체성을 만든 역사에 균열과 틈새를 내겠다는 의미에서 
이 책의 제호 <여>와 <성>사이에 빗금(/)을 그었다. 
기존의 여성이란 남성을 상정하지 않고는 자존적일 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여성에 틈새를 내는 여/성의 이론을 만들어보려 한다. 
여성이라는 요상한 이름과 성이라는 기이한 이름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것이다. 
다시 쓰는 행위는 여성주의적 주체의 역사를 창출함을 의미한다. 

 목차

[기획특집]
혐오의 시대—2015년, 혐오는 어떻게 문제적 정동이 되었는가 / 손희정 
관용의 역설—우리는 무엇을 참아내야 하는가? / 조주영 
문화영역의 여성화와 여성혐오 / 황미요조 
퀴어에 대한 언어, 퀴어의 언어 / 유민석 

[논문]
성소수자 인구, 커뮤니티를 그리는 작업에서 마주치는 문제들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를 중심으로 / 나영정, 정현희 
주디스 버틀러의 ‘물질로서의 몸’개념: 섹스의 허구성과 새로운 페미니즘 / 심찬희 
성춘향, 신여성, 그리고 피켓을 든 소녀 / 박이은실 

[여성이론가]
가사노동을 역사화하기: 실비아 페데리치 / 배상미 

[페미니즘 라이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 조혜영 

[페미니즘 사용 설명서]
처음이 아닌 연애, 가볍게 하기 / 사미숙 

[문화/텍스트]
이들은 왜 죄책감에 사로잡혔나: <괜찮아 사랑이야>와 <하트 투 하트> / 신주진 
정치를 넘어 정치적인 것으로—연극 <똑바로 나를 보라>에 대한 비평적 에세이 / 김슬기 
숙명여대 축제의 ‘복장규제’ 논란 / 이은선 

[주제서평]
17세기 세 유럽 여성과의 대화 / 최은숙 
이제는 돌아와 자리를 찾을 ‘그녀들’을 위해 / 심혜경 
애도의 저자들, 준엄한 기록들 / 김현미

[리포트]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 ―무지개 농성 6일 간의 기록 / 낙타 
여전히, 언니네트워크를 꿈꾸다 /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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