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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여이연/여/성이론

여/성이론 통권 제27호

발행일: 2012.12.13 저자: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편집부
 
 책 소개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바람직한 “정치”를 내세우며 자신을 찍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누구도 정치의 전면에 여성이나 젠더를 내세우는 사람은 없다. 자칭 “여성 대통령”을 운운하는 후보 역시 여성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소견을 제대로 밝힌 적은 없으며, 이를 비판했던 야권의 후보들에게도 “여성”은 복지 담론의 한 갈래일 뿐이다. 비난의 화살을 타인에게만 돌리지는 말자. “우리” 여성주의자들 역시 대선의 국면에서 이렇다할만한 이슈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젠더와 정치, 이 둘은 어떤 방식으로 이슈화될 수 있는가? 어떻게 젠더는 정치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가?

 

이번호 특집 글들은 “젠더불안, 민주주의, 혁명” 등의 단어들을 엮어가며 “정치적인 것의 귀환”을 시도하고자 했다. 우선 손자희는 「인터넷 지형을 둘러싼 여성주체 생산, 그리고 정치적 주체로 급선회하기」에서 우리시대의 젠더불안을 사적 여성 자아의 공적 수행 현상 속에서 포착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결혼시장에서 여성은 사적인 자아를 공적이고 객관적인 모습으로 포장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자희에 의하면 이것은 혁명적 욕망의 생산이 아니라 허용된 상징질서를 통한 욕망의 길들이기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손자희는 자끄 랑시에르와 함께 “감성적 혁명”을 통해 욕망의 주체를 생산할 것을 촉구한다. 이와 달리 임옥희의 논문에서 이 시대의 젠더불안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의 젠더평등지수를 통해 표현된다. 여성과 남성의 민주적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그동안 페미니즘은 때로는 평등을, 때로는 차이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평등에 대한 주장은 여성‘만’의 이해관계에 집착한다는 오명을 쓰기 일쑤였고, 차이에 대한 주장은 여성의 특수성을 설명해야하는 부담감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이에 임옥희는 새로운 보편주의에 입각한 “남녀동수운동(mouvement pour la parite)”을 제안한다. 보편적 개인을 성별이 없는 추상적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인 개인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전 대선후보 안철수는 국회의원의 수를 줄여 정치인의 부패를 막아보자고 제안한 바 있으며, 이에 최장집은 오히려 국회의원을 수를 늘이되 특권을 제한하자는 의견을 내 놓은 바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젠더 편향적 국회구성을 문제로 삼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남녀 동수의 국회를 만들자는 임옥희의 주장은 기발한 정치방향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는 소위 공적 영역에서만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혁명은 일상에서 그리고 내 피부에서도 일어난다. 타자에 대한 태도와 관련해 이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흔히 기괴함과 공포를 주는 낯선 타자 즉 괴물이 나의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전제에서 출발하는 정치와 윤리는 타자를 내 아래 동일시하거나 아니면 이로부터 거리를 둘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세 번째 특집논문인 신주진의 「내 안의 낯선 타자와 만나는 순간」에 따르면 외부에 있는 타자와의 관계는 내 안으로 소환된 타자를 대면할 때 비로소 모색될 수 있다. 그녀에 따르면 외부 타자에 대한 두려움은 곧 내 안에 있는 타자성을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주진이 타자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 권력관계를 재고했다면 네 번째 이경의 논문 「피부라는 전선」은 의료권력에 대한 고찰을 통해 새로운 정치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이경은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내가 사는 피부>를 분석하는 가운데 자본과 결탁된 생명권력과 이에 대한 반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영화 속에서 한 성형외과의에 의해 시행되는 피부이식과 성전환 수술은 한 인간의 피부 위에 기록된 그/녀의 역사를 제거하고 새로운 규범을 각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는 역설적으로 피해자가 지배자를 유혹할 수 있는 지점으로 역이용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이경이 궁극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살지 않는 피부로 요약되는 피부의 식민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가 사는 피부의 복권”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번 호의 기획논문들 역시 알차다. 첫 번째 박이은실의 논문은 2012년 4월에 일어났던 오원춘 사건을 심층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언론에서 이 사건은 미친놈에 의한 엽기적 성폭력과 살인 사건으로 또는 외국인에 의한 내국 여성의 죽음으로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박이은실은 이 사건의 숨겨진 내면에는 살아남기 힘든 경쟁의 시대가 자아내는 불안이 있으며 남성중심주의의 맥락에서 이는 결국 타자혐오, 여성혐오의 감정 형식을 띠게 된다는 점을 밝혀낸다. 기획논문 꼭지에 실린 나머지 두 개의 번역글은, 감히 말하건대, 󰡔여/성이론󰡕이 한 발 앞서 문제를 던지는 지면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장애-퀴어 이슈를 함께 공부하는 모임 리카패밀리의 구성원인 제이가 대표 번역한 첫 번째의 번역문은 피터 헤가티가 미국 간성(인터섹스) 활동가 셰릴 체이즈를 인터뷰한 글이다. 간성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우리의 상황에서 이 번역은 간성의 경험, 페미니즘과의 접점, 퀴어운동과의 교차점 등을 모색할 수 있게 하는 자원을 제공한다. 전혜은이 번역한 수잔 웬델의 「건강하지 않은 장애인: 만성질환을 장애로 대우하기」 역시 장애와 페미니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나아가 장애와 질환을 구분해야할지 아니면 이를 같은 계열로 놓아야할지 등에 대한 물음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선한 생각거리를 던지고 있다. 이 번역과 함께 전혜은이 소개하고 있는 여성이론가 수잔 웬델과 만나본다면 “페미니즘과 장애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호에서 김정경이 되살린 여성은 조선후기 천주교 여신도들이다. 김정경에 따르면 이들은 “집밖으로 눈을 돌린 여성”이자, “삶에서 죽음으로 걸어간 여성”이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여성’의 탄생을 알리는 전조였다. 문화/텍스트 꼭지에서는 성폭력 범죄와 레즈비언 성애를 다루었다. 장다혜는 그 첫 번째 글에서 현대사회에서 성폭력 범죄는 공포, 성폭력 범죄자의 격리, 경찰권 및 국가개입의 확대 등의 신화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대책도 처벌이나 예방에만 치우쳐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장다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폭력 범죄피해에 대한 회복이나 피해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 가해자의 범죄책임에 대한 인식과 그로 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밖에도 유쾌한 레즈비언 포르노그래피를 그야말로 흥분되는 언어로 전해주고 있는 두 번째 최아란의 글은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일 자체가 규범적으로 나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남성관객이 아닌 여성들을 위한 레즈비언 포르노그래피는 페니스 없는, 과장 없는 레즈비언 섹스가 유쾌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밖에도 이번호에서는 근래에 출판된 실라 로보섬의 󰡔아름다운 외출:페미니즘, 그 상상과 실천의 역사󰡕, 낸시 홈스트롬이 엮은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35인의 여성/노동/계급 이야기󰡕, 애너매리 야고스의 󰡔퀴어이론 입문󰡕 그리고 문현아의 󰡔엄마도 때론 사표 내고 싶다󰡕에 대한 서평을 실었다. 페미니즘 사전에서는 미학이론과 페미니즘을 접목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해온 김주현이 “숭고” 나아가 “여성적 숭고”를 풀이해 주고 있으며, 마지막 꼭지인 리포트에서는 여이연에서 직접 기획·진행한 미혼모 자기성장프로그램 “두근두근 나의 삶”과 지난 7월에 인도에서 열린 “성노동자 자유축제” 참여기, 고려대에서 진행되었던 반성폭력 운동의 이모저모를 싣고 있다.

저자 소개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편집부 -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 쓰고 대안문화를 만들며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로운 시대의 이론적 패러다임을 만들어 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연구자들의 모임이다.

 목차

<기획특집>
젠더불안, 민주주의, 혁명 - 정신분석과 정치적인 것의 귀환

인터넷 지형을 둘러싼 여성주체 생산, 그리고 정치적 주체로 급선회하기 / 손자희
젠더불안, 민주주의, 보편성 / 임옥희
우리 안의 낯선 타자와 만나는 순간: 괴물의 두 가지 변주-박연선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난폭한 로맨스> / 신주진
피부라는 전선-<내가 사는 피부>의 침탈과 겁탈 / 이경

<기획논문>
오원춘 사건과 장자연 리스트 / 박이은실
피터 헤가티와 셰릴 체이즈의 대화 / 셰릴 체이즈, 피터 헤가티(제이 옮김)
건강하지 않은 장애인:만성질환을 장애로 대우하기 / 수잔 웬델(전혜은 옮김)

<여성이론가>
수잔 웬델-손상의 현상학자 / 전혜은 

<되살아나는 여성>
조선후기 천주교 여신도들의 삶과 죽음 / 김정경

<문화/텍스트>
성폭력 범죄를 둘러싼 현대사회의 신화들 / 장다혜
레즈비언 포르노그래피의 비폭력적 성애-Abbywinters.com을 중심으로 / 최아란

<주제서평>
20세기 초 신여성의 꿈과 정치, 21세기 페미니즘의 사회주의 기획 / 박미선 
퀴어이론의 이율배반 / 서동진
‘일단 인정’이 보여주는 가능성-문현아의 <엄마도 때론 사표 내고 싶다>가 던져준 화두 / 이영주

<페미니즘 사전>
숭고 / 김주현

<리포트>
두근두근 나의 삶: 미혼모의 자기성장 프로그램 후기/ 김정아, 류영화 
성노동자 자유축제 / 미나 
고려대 반성폭력 운동 소개와 학내 페미니즘 운동의 과제 /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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