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특집에서는 군대와 여성의 문제를 다룬다. 첫 번째 논문 “군대와 성: 페미니즘으로 제도의 불평등을 넘어 체제의 폭력에 맞서기”에서 고정갑희는 군대제도와 징병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근래의 논쟁지점을 명쾌하게 분석하는 데서 시작한다. 여기서 고정갑희는 여성과 군대의 문제를 남녀평등의 패러다임 안에서 논의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주요 논점으로 삼고 있다. 나아가 고정갑희는 이 문제를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자본주의-군사주의-제국주의-가부장체제와 연결하여 볼 것을 주장한다.
두 번째 기획특집 논문 “여대 ROTC와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주체”는 정치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대학 내의 여대생 ROTC 창립과 증가추세를 분석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한다. 손자희에 따르면 여대생 ROTC의 창립은 무한경쟁으로 청년들을 내모는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여성문화에까지 확산된 결과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 손자희는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의 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자기 통치의 테크놀로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획논문에는 가사노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이우춘희의 “그 많고 많은 따뜻한 밥상은 누가 차렸을까?”를 실었다. 이 논문에서 이우춘희는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가사노동을 생산, 재생산, 소비와 관련된 다층적인 ‘살림’의 행위로 재규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나아가 이우춘희는 살림 노동의 관점에서 공적/사적 영역, 남성/여성의 젠더 이분법을 넘어서는 ‘먹거리 시민권’의 개념이 재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호에 소개한 여성이론가는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이다. 이 글에서 박건은 프레이저를 단순히 사회/정치 이론가로 볼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젠더 문제에서 시작하는 여성이론가로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건은 우선 재분배와 인정의 문제를 시각적 이원론을 통해 정의론(theory of justice) 안에 종합하고자 했던 초기 프레이저의 이론이 최근 재분배, 인정 그리고 정치적 대표라는 3차원적 정의 이론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추적하고 나아가 그녀의 정의론이 궁극적으로는 젠더 정의를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밝힌다.
되살아나는 여성에서는 제주 근대화의 등불이었다고 할 수 있는 제주 여성 강평국, 최정숙, 고수선을 재조명한다. 필자 장혜련에 따르면 이들은 다른 지역에서보다 여성 억압이 심했던 제주 지역을 벗어나 서울이나 일본에서 유학했던 여성들로서, 학창시절 계몽운동이나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을 뿐 아니라 후에 다시 제주로 돌아와 여성 교육 및 건강개선에 생을 바친다.
문화/텍스트에는 세 편의 글을 실었다. 첫 번째 글은 2011년 1월 22일에 작고한 여성작가 박완서의 소설을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분석한다. 배상미는 박완서 소설에서 지속적인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은 한국전쟁시기의 경험인데 특히 이 시기의 여성갈망이 먹을거리에 대한 갈망과 관계 맺기에 대한 갈망으로 집약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두 번째 글은 북유럽 장애인 성서비스 현황과 문제점을 장애여성의 시각에서 분석, 진단하고 있는 “장애와 성: 성욕의 서사를 넘어서”이다. 연수보고서를 정리하고 있는 이 글에서 지성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제공되고 있는 “섹슈얼베글라이퉁”과 같은 성적 서비스 활동을 소개하고 장애여성을 위한 성적 서비스 제공과 관련하여 어떠한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세 번째로는 대만의 성노동자 활동조직 코스와스 방문기를 실었다. 한국의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를 대표하여 이 글을 쓴 활동가 사미숙은 함께 갈 성노동자를 섭외하기 어려웠던 사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대만의 성노동자들의 현황, 나아가 대만과 한국의 서로 다른 성노동 운동의 지형에 이르기까지를 생생한 어조로 보여준다.
주제서평에도 세 개의 글이 실렸다. 최초의 10대 필자라고 할 수 있는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 쩡열은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서평에서 이 책이 10대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어른’ 독자층을 겨냥해 쓰였음을 아쉬워하면서 특유의 10대 감성으로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조선 여성의 일생』에 대한 서평에서 백민정은 이 책이 조선시대 여성이 남긴 문자의 흔적을 분석함으로써 당시 지배적이었던 성리학 이념 사이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폭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밖에도 현남숙은 주디 와이즈만의 『테크노 페니미즘』을 분석하면서 그녀의 입장이 테크노포비아와 테크노필리아의 대립적 관점을 넘어서는 제 3의 관점을 제공한다고 본다.
이번 호의 리포트 꼭지는 풍성하다. 103주년이 되는 3.8여성의 날 행사에 참여한 이안지영의 리포트는 이번 행사의 모토가 이명박 정부 하에서 더욱 열악해진 여성의 노동과 삶의 권리의 향상에 맞추어져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으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데 걸렸던 1895일의 투쟁을 보고하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 유흥희의 글은 이제 당사자 주체들만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야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세 번째 리포트 “굳이 만나지 않아도 괜찮아”에서 잇지는 ‘언니’ 여성주의자 세대와 다른 상황과 문제의식을 안고 있는 20대 여성주의자의 시각에서 2011년 4월 28일부터 3일간 진행되었던 ‘여성회의’에 다녀온 복잡하고 솔직한 소감을 담백하게 전한다.
이번 호 페미니즘 사전에는 기획특집의 의도를 살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김성민의 글을 실었다. 전쟁없는 세상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성민은 이 글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의 개념과 공론화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징병제와 군대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이 양심적 병역거부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를 짚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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