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12.06.18 | 저자: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편집부 |
책 소개 | ||
이번 호의 특집 주제는 “정치의 성폭력화, 성폭력의 정치화”로 잡았다. 총선에 이어 대선의 국면이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현재의 정치판을 성폭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되돌아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여성들이 평등한 지위를 누리는 이 때 여성을 피해자화하는 고루한 성폭력의 의제를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상 스펙과 능력을 갖춘 젊은 여성들은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여성주의 담론에 식상해하기도 한다. 이들이 여성들과 연대하기보다 남성들과 동등한, 성중립적인 경쟁상대로 인정받는 일에 더욱 몰두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펴보자.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안의 성폭력 상담소에는 여전히 많은 사건들이 접수되고 있다. 성희롱과 성폭력의 경험은 오빠의, 남자 교수의 인정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명예여성들을 빗겨가지 않는다. 모든 성적인 것을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오빠들의 언어에는 성폭력과 성희롱 같은 젠더 권력의 문제를 표현할 수 있는 어휘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판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진보를 자처하는 나꼼수 논객들의 비키니 사진에 대한 반응을 보자. 젠더나 성이 문제가 될 때면 언제나 이들은 세상이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듯 묘사한다. 모든 성적인 표현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며 여기에는 권력이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었던 많은 남성정치인들이 어느새 다시 나와 멀쩡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정치의 언어가 젠더나 성의 문제에 둔감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일례일 것이다.
이번 특집의 첫 번째 논문인 나영의 「성폭력을 먹고 자라는 정치와 정치가 뱉어내는 성폭력-반성폭력 의제의 재구성을 위한 고민들」은 바로 젠더 권력에 둔감한 정치판이 젠더 권력과 연관된 성폭력을 어떻게 무마하는지 나아가 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드러내 보여준다. 특히 나영은 나꼼수의 ‘코피 사건’와 정진후 사건을 분석하는 가운데 정치 담론 안에서 특정 정치인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일은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상대편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만 할 뿐, 근본적인 성폭력의 원인분석이나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향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와 조금 초점을 달리해서 두 번째 이윤상의 논문 「반성폭력운동이 급진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여성주의 진영에서 반성폭력의 의제를 어떤 방식으로 정치화해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정치화할 것인지를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이윤상은 반성폭력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만을 표출하거나 강경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안으로 움츠러들지 않는 방식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방식을 마련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특집논문과 더불어 문화/텍스트에 실린 글을 읽는다면 성폭력이 어떻게 정치화되는지, 정치가 어떻게 성폭력화되는지를 더욱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 밖 퍼포먼스: 나꼼수의 ‘가슴찾기’”라는 공동의 제목으로 묶여있는 고은진, 오경미, 김주현의 세 편의 글들은 나꼼수의 ‘코피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데 이들의 접근 방식과 시각 그리고 글쓰기 방식은 매우 신선하다. 가령 이들은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토론하며 서로의 글을 인용하는 가운데 각자의 글을 작성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글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새로운 정치 방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나꼼수’에 적극적인 지지도 냉혹한 비판도 보내지 못한 채 이를 어정쩡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여성주의자들의 불편한 심기가 바로 나꼼수의 젠더 없는 정치에 기원하고 있음을 꼬집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쓴이들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서 분명하게 부각되어야 하는 것은 정치 담론에서 여성의 가슴(젠더)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되찾는 것이다. 정치는 탈성화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젠더의 기입이 일어나야 하는 장소이다. 뿐만 아니라 글쓴이들은 나꼼수의 ‘비키니 사건’을 ‘코피 사건’으로 재명명함으로써 문제는 여성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를 수용하는 나꼼수 측의 무반성적인 태도에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 사건의 전개과정을 새롭게 조명한다. 나아가 글쓴이들은 여성주의적 정치 퍼포먼스로서노출 행위가 행위자의 의도 뿐 아니라 수용자의 반응까지도 고려하여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밖에도 이 땅의 비혼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번 호에 실린 두 개의 기획 논문을 읽어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비혼여성 농촌이주와 자기충족의 윤리」에서 최은주는 비소비적인 방식으로 자기충족과 성취를 이루기 위해 농촌이주를 감행한 비혼 여성들이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생태적인 순환 속에 위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윤희의 논문 「20~30대 중산층 비혼 여성의 생애 기획-“친구 같은 모녀”를 중심으로」 역시 신선한 시각을 던진다. 소위 88만원 세대, 혹은 캥거루족이라 불리는 청년층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이들의 불행을 사회구조적 원인을 통해 분석했던 것과 달리 이 논문은 비혼 여성들의 사적인 관계 즉 모녀관계의 분석에 집중하면서 사실상 친구 같다고 여겨지는 모녀 관계에 균열이 있음을 밝혀낸다.
여성 이론가 꼭지에서는 루인이 국내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트랜스젠더 이론가 수잔 스트라이커를 소개한다. 루인에 따르면 스트라이커는 젠더 개념을 중심으로 트랜스젠더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했으며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페미니즘과의 접점을 모색해 왔다. 스트라이커는 또한 역사 속에서 누락된 트랜스젠더의 역사와 인물을 발굴해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스트라이커는 이성애-동성애 이분법을 극복하고, 동성애와 퀴어 이슈를 동일시하는 관점을 넘어서기 위하여 이성애 규범성보다는 동성애 규범성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편 되살아나는 여성 꼭지에 실린 정해은의 「조선시대 이혼 위기에 처한 여성들」은 조선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이혼에 관한 법률이 전무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물론 조선 시대에도 이혼이 아주 허락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가령 남성들은 처가가 반역가일 경우 반역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혼을 청구하거나 부인이 집을 나감으로써 정절을 잃었다고 여기는 경우에 이혼을 청구했다고 한다.
이번 호에 실린 세 편의 서평을 살펴보는 것도 현재 여성주의 논쟁의 방향을 짚어가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 기대한다. 특히 고정갑희의 「성이론: 성관계, 성노동, 성장치」에 대한 심광현의 논평은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생태주의와 맑스주의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고정갑희의 과감한 시도를 분명하게 정리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정갑희의 이론이 또 다른 환원주의에 빠질 수 있음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에 대한 홍영화의 서평도 마녀사냥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비교 검토할 수 있는 자료로 충분하다. 그밖에도 한우리는 수전 벅 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에 대한 서평을 통해 헤겔이 단순히 정신 논리적 귀결에 따른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당시 아이티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을 목격하는 가운데 주-노의 변증법을 발전시킨 것임을 분명하게 짚어주고 있다.
서평과 더불어 페미니즘 사전을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우울증에 대한 사전을 써 달라는 편집위원들의 부탁에 조현준은 마녀와 우울증을 결합시키는 재미난 글을 투고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조현준은 이리가레, 크리스테바, 버틀러의 우울증 분석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시대착오적이고 못생기고 늙어버린 마녀 여성주의자들의 우울증을 진단한다.
이번 호에는 네 개의 리포트가 실렸다. 쥬리의 「권리의 공백,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청소년의 “동성애와 임신” 가능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인권조례제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보고하고 있으며, 두 번째 리포트에서 김장연호는 경순 감독의 영화 <레드마리아>와 관련하여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 “레드마리아: 고정갑희 교수와 함께 한 ‘여성학개론 2탄’”에 다녀 온 소감을 전한다. 세 번째 리포트는 총선 과정에서 제시된 각 정당들의 젠더 및 섹슈얼리티 관련 정책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진보냐 보수냐에 관계없이 각 정당들이 성 관련 정책들을 핵심적 정책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마지막 네 번째 리포트는 영화 <도가니> 열풍에 힘입어 제정된 “도가니법”의 내용과 의의, 그리고 이후의 과제들을 짚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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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편집부 -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 쓰고 대안문화를 만들며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로운 시대의 이론적 패러다임을 만들어 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연구자들의 모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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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
<기획특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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