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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여이연/단행본

젠더 감정 정치

저자 임옥희 여이연 2016.06.03

페이지 304 ISBN 9788991729292 판형 규격외 변형

 책 소개

● 출간 의의

불확실성의 시대, 감정은 어떻게 배치되는가?

글로벌 양극화와 여성혐오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페미니즘은 어떤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유표적 지시어가 없이 단지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당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는 작금의 세상 읽기이자 이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또 다른 출구에 관한 상상이다. 서문에서 제시된 “여성혐오가 시대정신이다”라는 테제는 바로 지금 강남역 지하철 10번 출구의 현실이 되어 있다. 미래와 과거로 우회한 그녀의 테제가 채 발화되기도 전에 페미사이드의 현실이 먼저 당도해 있는 것이다.

 

저자는 글로벌 양극화와 여성혐오의 관계를 비롯한 우리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젠더와 감정 그리고 정치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가장 긴 사다리로 젠더무의식이라는 인간의 심연을 굴착해나가는 한편, 이론의 총동원체제를 가동시켜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현상을 분석, 비판하고 함께 대안을 찾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상시적 고용불안과 살인적 경쟁으로 인한 경제적 공황이 심리적 공황으로 드러난 것이 여성혐오라고 그녀는 진단한다. 글로벌 양극화가 초래한 경제적 공포와 불안, 계층상승의 좌절로 인한 분노와 공격성이 자기파괴로 치닫지 않도록 바깥으로 드러난 것이 여성혐오이다. 젠더이해관계가 걸린 위협적 사건이 드러나는 순간 억압되었던 젠더무의식이 의식의 표면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녀가 주목하는 감정의 젠더정치는 이와 같은 곤경의 해소가능성을 담보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고정된 좌표를 갖는 것이 아니라 몸들 사이를 흘러다니는 강렬한 만남이자 힘들의 흐름”인 감정에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의 뇌관을 발견한 것이다. 변덕, 우연성, 예측불가능성, 변칙성으로 인해 몸에 각인된 감정은 끊임없이 움직임으로써 자본의 이성적 기획에 완전히 포획되지 않으며 바로 그 때문에 자본 너머를 상상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여성혐오의 폭발이 SNS에서 셀렙들에 의한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라는 해시태그운동을 결과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복잡다단한 이유들이 마법적으로 합류하여 혐오가 친화로, 증오가 사랑으로 가역적으로 변형되는 정동의 사회심리적 공간에 주목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감정정치이다.

 

이런 현상 자체가 논리와 시각 중심주의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이라는 당대의 패러다임을 뛰어 넘는 예측불가능의 전파력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마법이라는 명명은 해결불가능이 아니라 다른 해결의 가능성에 대한 은유이다. 요컨대, 감정의 젠더정치는 정치경제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여러 얼굴로 치환되고 전이되는 감정의 가장무도회에 집중하여 그것을 재해석, 재배치함으로써 젠더문화의 변혁을 앞당기려는 노력이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우리 사회의 정상성 밖에 위치한 폭력과 호러, 수치와 추락을 감정의 젠더정치로 재해석함으로써 페미포비아와 여성호러리즘, 모성살해와 모성숭배 그리고 엄마포르노, 귀요미와 팜므파탈 등 갈등하고 충돌하는 목소리들을 복원하여 도래할 근대의 꿈을 실현하는 매개로 읽어내는 데 있다. 목 잘린 메두사의 흔적을 예수에게서 찾아내는 여성주의적 독법에 바탕하여 남성의 목을 베는 여성 호러리즘 계보를 재현하고 마조히즘과 포르노그래피에서 상호인정과 윤리를 발견하며, 수치와 추락에서 비상의 잠재력을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자본과 기계적 이성에 토대한 안정적인 이분법을 균열하는 마법의 현현이라 할 수 있다. 이론의 성채에 접근하여 그에 대한 주석을 달거나 접근은커녕 그 담벼락도 올라타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태반인 우리 지식사회의 현상과 달리, 저자는 대담하게 이론의 성채를 접수하여 그것을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개방해내는 힘겨운 작업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임옥희라는 메신저를 통과하면서 변용되는 메시지들의 형상을 따라가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총 9장으로 이루어진 이 글들은 무엇에 관한 글이라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거의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심과 주변, 처음과 끝, 테제와 안티 테제의 경계가 없다. 장 혹은 절이라는 분류는 문학제도가 갖는 형식일 뿐, 그녀의 글은 이들의 경계를 넘어 글들끼리 헤쳐모여를 반복한다. 장과 절이라는 분절에 잠시 복무했던 글들이 마치 유기체처럼 합체된다는 점에서 그녀의 이론(理論)들은 이론(異論)이며 또 이론(移論)이다. 이 점에서 저자의 책을 따라가는 것은 한 문장에 과거, 현재, 미래가 응축되기도 하고 테제와 안티 테제, 논리와 시적 비약이 이웃처럼 자리하는 현장에 초대되는 일종의 여행경험이다. 사드와 아이히만, 총통의 지상명령 그리고 AI가 저 이성의 철학자 칸트와 논리적으로 겹치는 지적 모험 속에서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하기 힘든 ‘자본주의 리얼리즘’ 시대를 마법처럼 균열하는 다양한 젠더의 감정정치가 재해석되고 재배치될 수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하기 힘들어진 ‘자본주의 리얼리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마법’처럼 균열을 낼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의 젠더 정치에 주목하고자 한다. 여기서 마법이라고 함은 감정의 우연성, 예측불가능성, 전파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성혐오가 폭발하면, 복잡다단한 이유들이 ‘마법적’으로 합류하여 여성친화적 정동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혐오가 친화로, 증오가 사랑으로 가역적으로 변형되는 정동의 사회심리적 공간에 주목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감정정치이다. 이런 감정의 젠더정치는 상징적 세계만으로는 포획할 수 없는 전언어적, 신화적 영역에 주목하는 것이기도 하다.

 

감정은 다양한 얼굴로 다가온다. 행복한 모습 아래 모호한 슬픔이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 수치와 낙인이 자부심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공격성, 우울, 애도, 마조히즘, 혐오, 수치, 자괴감과 같은 온갖 정동들은 지하로 흘러 들어가 서로 뒤섞이게 된다. 이처럼 우연성, 일탈성, 변칙성에 바탕한 감정은 정치경제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 얼굴로 치환되고 전이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의 젠더정치는 감정의 가장무도회에 집중함으로써 젠더의 관점에서 그것을 재/해석하고 재/배치하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다.

 

1장은 젠더 무의식의 귀환과 지형도에 관한 것이다. 젠더 무의식은 타자의 억압의 흔적이다. 젠더 무의식은 다형도착적인 유아가 남자 혹은 여자로 강제적으로 분화되어야 하는 젠더 사회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경험하는 억압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다성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규범과 질서에 따라, 남성으로서의 정체성,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해야만 사회적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사회화되기 위해 자기 안에 있는 특정한 욕망을 억압해야 하고, 그로 인해 의식으로 부상하지 못한 잉여는 부착될 곳을 찾아서 떠돌아다닌다. 그런 현상이 특정한 젠더억압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그것을 젠더 무의식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억압된 젠더 무의식은 틈만 있으면 유령처럼 출몰한다. 1장에서는 젠더 무의식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 맥락과 시대에 따라 젠더 무의식이 귀환하여 가시화된 형태로서 신여성(페미니스트), 팜므 파탈, 레즈비언 뱀파이어, 귀요미, 된장녀 등을 분석한다.

 

2장에서는 여성폭력의 회색지대를 조명하고자 한다. 모성, 보살핌, 배려, 헌신을 여성적 윤리로 설정하면서 여성에게 폭력은 없다고 주장하는 기존 페미니스트 담론은 여성이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서나마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열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폭력성은 젠더와 상관없이 인간의 존재조건을 구성하지만, 그런 폭력이 젠더정치에 따라 재/배치됨으로써 어떻게 젠더이해관계를 달리하는가? 평화와 공존을 외치지만 폭력이 주는 치명적 유혹은 무엇인가? 폭력성은 어떻게 쾌락과 에로티즘, ‘작은 죽음’으로 연결되는가? 남성적 나르시시즘이 어떻게 윤리적 폭력이 되는가? 이러한 물음과 더불어 여성적 폭력이 어떻게 신화적, 마법적인 여성적 힘/권력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분석한다.

 

3장은 2장에 이어 ‘여성의 폭력성’이라는 치명적 매력에 매혹되는 남성의 젠더 무의식에 집중한다. 그로 인해 가장 신성한 것이 어떻게 비천한 것이 되고, 쾌락이 어떻게 혐오로 전이되며, 순결한 것이 어떻게 불결한 것으로 전염되고, 아름다운 것이 어떻게 추한 것으로 뒤집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여신 메두사는 유일(남성)신의 출현으로 비천한 괴물로 추락하고, 살모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아이콘이 된다. 하지만 그녀의 억압된 흔적은 남성신의 얼굴 속에서 젠더 무의식으로 귀환한다. 신성가족 안에 봉쇄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성스럽지만, 가족의 경계를 벗어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경멸받는다. 이성적이라고 주장해온 남성들이 머리(이성)를 잃고, 자신들이 여성의 자리라고 규정했던 바로 그곳으로 추락하면서 비체가 된다. 이성/광기, 성녀/창녀, 순결/불결, 비상/추락 등의 이분법에서 ‘제자리’ 혹은 정상성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젠더 무의식의 정치적 배치와 무관하지 않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4장에서는 마조히즘의 경제성에 관한 수많은 질문들과 대면한 다. 여성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잘 참고 견딘다는 점에서 본성상 수동적인가? 그렇다면 윤리적 마조히즘이라고 할 만한 희생, 헌신, 인내, 겸허를 여성적 윤리로 연결시키는 것은 반페미니즘적이고 반윤리적인가? 여성적 마조히즘과 신 앞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성인들의 희생은 어떻게 다른가? 마조히즘적 성향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여성적인 특징으로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젠더정치는 아닌가? 마조히즘은 ‘이성적 도덕법칙이 잔혹하게 억압해온 여성의 몸에서 리비도 충동과 쾌락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욕구에서 젠더정치성을 찾을 수는 없는가? 마조히즘의 경제는 젠더의 정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마조히즘이 단지 고통의 윤리경제로 환원되지 않고, 상호인정의 욕망과 쾌락으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은 없는가? 이런 물음과 마주하면서 여성적 주이상스에서 마조히즘의 젠더정치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5장은 수치의 양가성이 젠더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정치화되고 재배치되는지에 관한 글이다. 수치심은 사회적 약자들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 수도 있다. 다수가 누리는 지배적 문화는 정상적인 것으로 군림한다. 한 사회의 ‘정상성’은 그런 기준에 미흡한 자들이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하면서 ‘자발적으로’ 그것을 욕망하도록 만든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국가의 경계선을 따라 명예/치욕, 용기/비굴로 갈라지고 치욕을 당한 민족은 그것을 애국심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이런 민족국가적 전략은 수치심을 여성의 얼굴로 은유화하기도 한다. 이 장에서는 여성적 섹슈얼리티를 수치로 만든 것에 저항함으로써 그것을 자부심으로 만들어내는 안젤라 카터Angela Carter,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의 윤리적 포르노그래피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6장에서는 추락의 재/의미화를 존 쿳시의 소설 󰡔추락󰡕을 통해 분석한다. 몰염치의 시대에 추락의 시학은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몰락과 실패를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해진다. 추락은 인간에게 바닥모를 깊이를 역설적으로 산출해준다. 추락으로 인해 주체는 ‘타자로서 자기’와 조우하게 된다. 주체의 나르시시즘이 붕괴되는 순간은 굴욕적이고 수치스럽다. 타자와 만나게 됨으로써 자신의 괴물성이 벌거벗겨지고, 주체에서 탈주체화로의 ‘코페르니쿠스적’ 방향전환이 일어날 때, 추락의 시학이 가능해진다. 이 장은 그런 추락의 재/의미화와 젠더의 관계를 분석한 글이다.

 

7장은 애도의 정치에 관한 장이다. 슬픔과 눈물은 여성의 몫으로 간주되어왔다. 누구나 느끼는 슬픔이지만 슬픔은 젠더정치에 따라 서열화 되고 위계화 된다. 슬픔은 개인적인 것이므로 탈정치적인 감정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흘러넘치는 슬픔은 전염력이 강하고 공적인 성격을 띤다. 깊은 슬픔은 자기를 잃고 타자의 삶을 유령처럼 껴안는 것이다. 사랑을 상실한 슬픔은 분노로 전환되고 분노의 조직화는 정치적 변혁을 꿈꾸게 해준다. 타인의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빌려오고 인용하는 ‘애도 사이의 대화’를 통해, 슬픔은 공유되고 공적인 것이 된다. 그로 인해 애도의 감정은 타자와의 공존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 젠더정치로 작동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8장은 사랑의 용도에 관한 분석이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성, 사랑, 결혼, 가족 등을 권력관계로 해석함으로써, 스윗홈sweet home을 스웻홈sweat home으로 탈신비화시켰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에게 사랑은 남성권력의 원천이며, ‘남성지배’라는 건축물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시멘트’였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에게 희생, 헌신, 봉사하게 만드는 사랑, 결혼, 가족에서부터 여성이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르러 그와 같은 사랑의 탈신비화는 여성의 욕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에바 일루즈Eva Illouz는 사랑의 용도를 다르게 분석한다. 사랑이 젠더 감정불평등의 기원으로 작동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친밀성을 원하는 여성의 인정욕망이라는 점을 간과하게 되면, 사랑의 정치경제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사랑의 물질적 토대와 젠더 무의식적 욕망을 재해석하고 있는 에바 일루즈의 사랑분석은 주목할 만하다.

 

9장은 21세기에 이르러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의 이론을 중심으로 한다. 이성적 주체의 죽음으로 인간중심주의의 종언이 선고된 시대에, 그녀는 자유주의 휴머니즘을 재활용한다. 그녀가 말하는 휴머니즘과 페미니즘은 어떤 것일까?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로서 그녀는 혐오, 수치심, 사랑, 공감, 연민이라는 감정적 영토에 집중한다. 이런 감정들을 ‘정치적 감정’으로 활용하려면, 서사적 상상력이 필수적이라고 그녀는 주장해왔다. 이 장은 그녀가 주장한 페미니즘이 휴머니즘과 만나 어떻게 재활용될 수 있을 것인지, 그 점을 성찰적으로 살펴보고자 한 글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젠더를 넘어서 퀴어젠더를 주장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감정의 젠더정치에 주목하는 데서 페미니즘의 정치성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아직 도래한 적이 없는 미래의 약속으로서 페미니즘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감정의 젠더정치를 분석한 글들이다.

 
 저자 소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저서로 「주디스 버틀러 읽기: 철학의 우울과 젠더의 조롱」,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폭력의 시대, 타자와 공존하기, 타자로서의 서구, 발레하는 남자, 권투하는 여자, 여이연 정신분석세미나팀과 함께 공저한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 등이 있다. 
 
 목차

서문: 젠더 감정 정치 

1장 젠더 무의식 
1. 젠더 무의식의 지형도
2. 젠더 무의식의 귀환

2장 폭력의 에로티시즘
1. 여성폭력이라는 회색지대 
2. 윤리적 폭력으로서 나르시시즘
3. 폭력과 죽음의 에로티시즘
4. 폭력의 재배치를 위하여

3장 비체 혹은 호러 
1. 메두사, 유혹하다
2. 메두사, 예수되다 
3. 메두사, 비체 되다 
4. 메두사, 되살아나다

4장 마조히즘의 경제 
1. 프로이트의 마조히즘 경제
2. 사비나 슈필라인의 ‘생성의 기원으로서 파괴’
3. 제시카 벤자민: 사랑의 굴레로서 마조히즘
4. 여성적 주이상스 
5. 성적 자기계발로서의 S/M

5장 수치의 얼굴 
1. 수치의 이중성 2. 여성의 얼굴을 한 수치 3. 윤리적 포르노그래피

6장 추락의 시학 
1. ‘불가능한’ 비극적 추락 3. 추락 속에서 모두가 같아지리라 
2. 세속적 추락, 견딜 수 없이 가벼운 4. 추락의 재의미화

7장 애도의 정치 
1. 애도의 정치화 2. 애도의 젠더화 3. 빌려온 애도 
4. 사랑의 흔적으로서 애도 5. 좋은 청자 되기

8장 사랑의 용도 
1. n포 세대, 사랑의 문법 2. 이런 사랑 3. 사랑의 젠더정치경제
4. 자유와 평등의 딜레마 5. 사랑의 생태 변화

9장 공감의 상상력
1. 페밍아웃 시대 2.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3. 서사적 상상력 
4. 혐오에서 벗어나 인류애로 5. 사랑의 취약성에 열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