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지영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 2013.07.26
페이지 325 | ISBN 9788991729261 | 판형 A5, 148*210mm
책 소개 | ||
20세기 초 근대의 포문이 열리면서 공적 공간에 여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서유럽에 기원을 둔 문명 개화담론과 근대 국민국가 이념이 조선으로 유입되면서 근대적 교육의 수혜자로서 여학생이 부상하고 근대적 형태의 직업부인과 여성 노동자층이 탄생하였다. 이들은 규방과 가족의 틀을 벗어난 여성들의 새로운 삶의 양식을 꿈꾸기 시작하였다. 도시를 배경으로 양산된 식자층 여성뿐 아니라, 농촌 지역의 기층민 여성들도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여 근대의 시민이 되고자 하였다. 전통과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했던 서구적 근대의 이식,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과 맞물린 타율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물질적·문화적·인식론적 시차(時差)를 경험한 한국은 삶의 각 층위에서 근대의 다면적인 얼굴을 만들어내었다. 그 식민지 근대의 급격한 소용돌이 가운데, 이전 시대와는 다른 극적인 삶의 변화를 체험한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근대는 도시의 형성과 더불어 삶의 형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갔다. 식민지 한국에 등장한 도시들은 비록 근대적 외관을 갖추었지만 결핍과 불균형으로 이루어진 식민지 도시의 전형들이었다. 하지만 현란한 스펙터클과 더불어, 개조와 문명의 이름으로 들이닥친 근대는 식민지 도시의 침울한 경관을 관통하여 여성들의 공간, 규방에까지 이르렀다. 전통적인 여성의 부덕과는 다른 패러다임의 서구적 근대 교육을 받은 신여성 집단, 일자리를 찾아 도시 공간으로 나온 기층계급의 여성 등, 근대의 직접적인 세례를 받은 여성들은 전체 여성인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소수의 여성들을 통해 경험된 근대의 파장은 충격적인 것이었으며 이는 이후에 펼쳐질 여성의 삶의 변화의 근간을 마련하게 된다. 근대의 혁신적 이상이 양산한 여성들의 해방과 자유의 내러티브는 강고한 인습의 현실과 부딪치면서 갖가지 모순과 좌절의 굴곡을 겪게 된다. 하지만 오랜 가부장제의 전통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움과 권력을 구가했던 남성과 비교할 때, 여성들에게 근대는 삶의 시나리오를 전면적으로 새롭게 쓰게 한 역사적인 장이었다.
발터 벤야민은 19세기 유럽의 도시 파리에서 거리, 아케이드, 백화점, 만국박람회, 조명, 패션, 매춘부, 산책자, 부랑자, 권태 등 근대의 징후들을 발견하였다. 자연, 전원 풍경을 대체한 도시 거리의 파노라마에서 가장 각광받는 것은 상품이었으며, 도시는 일순간 거대한 상품의 시장으로 전이된다. 근대 도시가 만들어내는 상품들, 환영과 이미지들, 매혹과 헛된 미망 가운데 여성이 있었다. 그 속에서 여성은 환영과 미망 그 자체이자 스스로 상품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이미지와 상품을 소비하는 주체이기도 하였다. 이 책은 도시의 파편적 이미지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뿌리내리는 시대의 심층을 포착하고자 한 벤야민의 시선을 한국의 역사 속으로 소환하여, 20세기 초 식민지 도시 경성의 근대적 풍경들을 탐색하고자 한다. 특히, 벤야민이 각별히 주목하지 않았던, 그리고 아직 도시에서 뚜렷이 사회적 존재로서 가시화되지 않았고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던 여성의 자리를 복원하고자 한다.
이 책은 ‘도시 공간’과 ‘여성’이라는 두 키워드의 결합을 통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첫 번째는 도시를 통해, 여성의 삶은 어떤 다른 이야기들을 양산하였는가 라는 물음이다. 이는 도시 공간에 내재한 모더니티가 궁극적으로 여성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질문과 맞물린다. 두 번째는 여성을 통해, 도시는 어떻게 다르게 접근될 수 있을까 이다. 이는 젠더를 통해 한국의 식민지 근대가 어떻게 다르게 기술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롤랑 바르트는 S/Z에서 “다시 읽기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같은 이야기를 읽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시대를 다르게 본다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간 복수의 주체들에 대한 새로운 읽기에서 가능하며, 침묵하거나 배제되었던 복수의 시선들을 역사 속으로 되돌리는 작업 속에서 온전한 의미를 획득할 것이다.
식민지 도시 경성에서 ‘여성’은 계급과 젠더, 인종(에스니스티)과 식민주의가 다층적으로 얽혀있는 사회 정치적 기호이기도 하다. 이들에 대한 탐색은 호미 바바(Homi Bhabha)가 문화의 위치 The Location of Culture에서 식민지적 주체의 특징으로 언급한 바, “양피지 사본(palimpsest)에 겹쳐 쓰인 타자성”의 흔적을 찾아가는 한 과정에 다름 아니다. 20세기 초, 근대적 자기 인식의 역동적인 주체인 동시에 ‘제3세계’ 서발턴이었고, 유교의 습속에 기반 한 가부장제 내의 성적 타자이면서 식민지 원주민 여성(colonized woman)이었던 그들의 존재양식을 살피는 작업은 궁극적으로 젠더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근대를 새롭게 바라보는 역사 기술의 한 시도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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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 ||
서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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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
들어가며: 여성을 통한, 도시에 대한 물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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