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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키움

[제57차 콜로키움] 매흉(埋凶)과 화흉(和凶)을 통해 본 조선 시대 성별과 신분 문제

제 57차 콜로키움이 6월 18일 저녁 7시,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열립니다.

아담 보넷 선생님께서 <매흉(埋凶)과 화흉(和凶)을 통해 본 조선 시대 성별과 신분 문제> 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시고 토론이 있을 예정입니다. 부디 많이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고 토론의 장을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은 발표자와 간단한 발표문입니다. 

 

 

57회 콜로키움 발표자 아담 보넷은 토론토 대학교 동아시아 학과에서 조선 후기의 향화인과 황조인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의 HK연구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From Kang Shijue to the Chu-Hat-Hall Duke and Back Again: Biography and State Control in North Hamgyŏng,” Korean Histories 3.1 (January, 2012), “Ruling Ideology and Marginal Subjects: Ming Loyalism and Foreign Lineages in Late Chosŏn Korea,” Journal of Early Modern History 15, no. 6 (2011): 477-505 등이 있다.

 

매흉(埋凶)과 화흉(和凶)을 통해 본 조선 시대 성별과 신분 문제

조선 후기 궁중에서는 여러 번에 걸쳐 저주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 사건들은 <朝鮮王朝實錄>, <推案及鞫案> <承政院日記> 등의 사료에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야담집과 고전소설에서도 묘사되고 있다. 저주의 한 방식인 埋凶과 和凶의 경우에 주로 다양한 신분의 궁궐 여인들이 뼛가루를 음식에 타거나 옷에 뿌려서 사람을 저주한다던지(和凶), 해골을 땅에 묻어 사람을 저주하는 방법(埋兇)도 있었다. 매흉이나 화흉을 한다는 소문으로 인해, 상궁과 비녀들을 잡아 심문한 후 진술하게끔 하는 사건이 종종 나타났다. 고문을 당해 진술하였기 때문에, 공범자를 연루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과정에서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서 거짓 진술을 하게 되어 사형까지 당하게 되었다. 많은 경우 궁궐의 여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매흉과 화흉 사건들은 당쟁까지 관련되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시대 역사학자들은 埋兇과 和凶에 대해 아직까지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못해 왔고, 역사학계에서도 매흉과 화흉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주로 정치사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 발표는 매흉과 화흉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에서 백성과 임금을 연결하는 저주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문화사적인 입장에서 탐구할 것이다. 특히 <於于野談>과 <仁顯王后傳>과 같은 고전문학 속에 등장하는 매흉과 화흉 관련 이야기를 분석한 후, <推案及鞫案>에 기록된 영조 시대 庚戌年 저주 사건의 서사분석으로 이 발표를 구성하고자 한다. 이 세 개의 서사가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허구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조선 후기의 사회 ․ 문화사를 이해하는 데에 상당히 도움이 됨을 주장하고자 한다. 특히 젠더와 신분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흉과 화흉은 양반 남성들의 붕당 정치와 연결이 되면서도 일차적인 매개가 비녀와 상궁인 만큼 조선 시대의 성별과 계급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