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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키움

[제39회 콜로키움] "트랜스"와 "젠더", 그 불안한 동거

제 39회 콜로키움: "트랜스"와 "젠더", 그 불안한 동거

 

 

일시: 5월 18일 월요일 오후 7시

 

장소: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발표자: 루인(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활동가, 여성학 석사)

 

 

5월 여이연 콜로키엄에서는 (일부)트랜스젠더 이론의 맥락에서 젠더를 재독해하고, 외모 혹은 피부 표면을 둘러싼 젠더 해석의 다른 가능성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만나 본 많은 트랜스젠더 이론가/활동가들은 "내가 젠더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사회의 젠더 체계가 나를 위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트랜스젠더의 경험 맥락에서 해석하는 젠더의 의미가 트랜스젠더를 배제한 기존의 젠더 의미와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본 발표는 트랜스 젠더 주체의 경험과 시각에서 “젠더란 무엇인지”를 다시 질문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트랜스’와 ‘젠더’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2009년 현재 우리에게 트랜스젠더는 주로 미디어나 특정 이미지를 통해서 구전/소문 속에서만 존재하고, 낯설지 않음과 익숙하지 않음 사이 어딘가에서 떠도는 어떤 것입니다. 주변에 트랜스젠더인 지인이 없다 해도 우리는 예컨대 '하리수'를 통해서 트랜스젠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트랜스 젠더인 사람들의 경험을 잘 아는 것은 아니며 트랜스 젠더 이미지에 친숙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것들처럼 트랜스 젠더도 널리 유통된 어떤 이미지를 통해서가 아니면 상상조차 못하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농무(濃霧) 속을 걷는 것처럼 이 어렴풋한 이미지는 트랜스젠더 개인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리수'를 매개하며 트랜스젠더를 "여자보다 더 여성스러운/예쁜" 존재로 이해하면서 모든 트랜스젠더를 곧 mtf/트랜스여성(여성으로 전환한/전환하고자 하는 남성)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ftm/트랜스남성(남성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남성)은 빈번하게 "트랜스남성도 존재하나요?"란 질문 속에서만 존재하곤 합니다. 아울러 외모 혹은 미모는 트랜스젠더의 '진정성'을 승인하는 기준으로 여겨집니다. mtf/트랜스여성이 '여성'답지 않거나 ftm/트랜스남성이 '남성'답지 않으면, "진정성"을 의심하며 뭔가 의심스럽고 부족한 존재로 취급됩니다.

 

 

본 발표는 트랜스 젠더와 관련한 많은 논의들을 재검토하면서 “그들”만의 문제로 여겨져 온 것들이 실상 “우리”들의 내부에 있는 문제임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트랜스 젠더 연구 내부에서조차 많은 논의들이 트랜스 젠더를 '그들만의 문제'로 다루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서 “객관적” 연구 경향을 띱니다. 그 결과 트랜스젠더는 별도의 존재, 별개의 범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현실과 이론에서도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많은 질문들은 "그들은 도대체 왜 수술을 하려고 하느냐?" "그들이 트랜스젠더가 되는 이유는 무엇이냐?" 식입니다. 다른 한편 어떤 이들은 트랜스젠더란 "젠더를 트랜스(횡단/위반/초월)하는 존재"라며 '급진적인 존재'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 발표에서 저는 이런 식의 호기심일 뿐인 질문이나 논의, 정교한 이론화가 뒷받침 되지 않는 급진적 정의 등이 지닌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내면서, 젠더이분법에 '저항'/'순응하지 않는' 트랜스젠더 주체만을 ‘인정’하려는 사회적 인정 기제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젠더이분법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트랜스젠더는 비난하고 배제하는 효과도 분석하고자 합니다.

 

 

* 여이연 콜로키움은 매달 세번째 수요일이오나, 사정상 이번달은 월요일에 진행합니다.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