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차 여이연 콜로키움
촉각의 현상학과 이리가레의 여성주체성
>발표: 김남이
>일시: 2014년 9월 23일(화) 오후 7시-9시
>사회: 박미선
>장소: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오시는길 보기)
>발표자 소개: 서울대학교 미학과 석사 졸업, 대륙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특히 미학과 윤리학의 접점에 관심이 많다.
>발표 내용: 프랑스 철학자 이리가레는 전통 철학에서 끊임없이 견지되어 온 시각의 특권화가 한편으로는 육체와 가장 가까운 촉각을 폄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을 억압하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전통 철학은 일반적으로 촉각이 다른 감각보다 인식 능력에서 열등하며, 사실 판단이든 가치 판단이든 참을 판단하는 데에 오류의 근거로 기능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오류 없는 진리를 추구해온 전통 철학은 촉각을 감각들 중에서도 배제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온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촉각뿐만 아니라, 몸, 감각, 감정, 주관 등에도 비슷한 혐의를 두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인식은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사유 방법을 추구한 전통 철학이 몸보다는 정신을, 감성보다는 이성을, 촉각보다는 시각을 보다 우월한 것으로 상정해 온 것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인식을 분석하면서, 이리가레는 철학이 배제해 온 것들의 공통분모가 “여성적-모성적”인 것과 관련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즉 철학에서 “여성적-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과 대립되면서, 정신이 아닌 육체에 가까운 것, 이성적인 것이 아닌 감각적인 것, 형상이 아닌 질료인 것을 대표하게 된다. 이로써 이리가레는 전통 철학에서 촉각의 억압과 여성의 억압이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포착하고, 그 억압의 기원을 추적하여 촉각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시도한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촉각을 활성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여성을 주체로 세우는 일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리가레의 촉각론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전기 저작들과 중후기 저작들을 대비시키는 것이 유용하다. 왜냐하면 전기 저작들에서 그녀는 촉각을 시각 중심주의와 남성 중심적 지배담론의 비판적 도구로 이용하는 데 집중한 반면, 중기 이후의 저작, 특히 본 글이 집중하는 『성차의 윤리학(Éthique de la Différence Sexuelle)』에서는 촉각을 비판적 도구로 사용하기 보다는 촉각 자체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촉각이 비판적 도구이자 은유로 쓰이는 전기 저작과 긍정적이고 경험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중기 저작의 대비를 통해 그녀만의 ‘여성 주체성’ 개념과 ‘성차’ 개념은 더욱 명백해진다.
그녀는 성차를 실행시키고 여성 주체성을 세우기 위해서 촉각적인 것을 재사유할 것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촉각은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감각 대상의 실존을 증명하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기에 이러한 촉각과 마찬가지로 전통 철학에서 여성 주체성은 가시화된 적이 없으며, 남성 주체가 중성화되어 주체 일반의 권좌를 누려온 이래로 여성은 촉각과 같이 존재하지만 부인되어 온 주체이다. 다시 말해 철학과 정신분석학이 여성성을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결핍된 것으로 규정한 이유는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촉각은 여성 주체성을 주장하는 이리가레에게 중요한 감각으로 나타난다. 그녀에 따르면 이 촉각은 인식적 기능에서는 저급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주체의 발생과 주체-타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그녀는 촉각을 ‘인식적 측면’에서 보기보다는 주체의 발생에 관여하는 ‘존재론적 측면’과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설정하는 ‘윤리학적 측면’에 주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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