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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키움

[제30회 콜로키움] "여성, 민족, 국가: 페미니스트 국가이론을 향해서"

여성문화이론연구소 30회 콜로키움:

 

"여성, 민족, 국가: 페미니스트 국가이론을 향해서"


발표: 박미선

날짜: 2008년 4월 29일(화)* 저녁 7시

장소: 여이연 다락방


1980년대 중반 이후 페미니즘 이론은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민족(nation)과 국민국가(nation-state)의 근현대적 형성과 유지에 핵심적이었다는 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민족, 국민국가, 민족주의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해왔습니다. 민족(주의)을 둘러싼 담론에 대한 최근 20여년간 페미니즘의 이론적 개입은 민족(-국가) 형성 기획에 여성의 역할이 핵심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체 구성에서 여성은 항상 주변화되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 주요한 흐름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적 틀을 사용하여 민족(-국가)간의 차이와 유사성을 비교문화적으로 접근합니다. 다른 한편, 주로 1990년대 이후 부상한 디아스포라 관점을 중시하는 논의들은 종종 전지구적 이산으로 형성된 새로운 정체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국가, 민족, 혹은 지역이 주체성을 규정하는 힘을 종종 간과하거나, 시민권을 둘러싼 국가의 규율이나 인종문화/민족적(ethnic or national) 정체성이 인종정치에 이용되는 방식을 정치하게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해 왔습니다. 이 두 큰 흐름에 덧붙여, 민족이나 국민국가와 달리, 국가(state)는 페미니즘 이론이 체계적으로 다루지 못한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쟁과 관련하여 국가를 중심으로 한 조직적 폭력의 문제를 제외한다면, 페미니즘의 국가 이론은 매우 빈약하며, 전쟁과 국가 폭력(즉 평화)의 문제 역시 젠더와 섹슈얼리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심으로 보다 정치한 이론화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이번 콜로키음은 민족, 국가, 여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민족-국가를 여성의 시각과 입장에서 이론화하는 틀을 모색하고자 1980년대 이후 페미니즘이 남성중심적인 민족, 민족-국가, 국가 담론에 개입해 온 논의들을 한국여성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정리․소개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국가에 대한 페미니즘 이론화의 방향을 타진해 보기 위한 사전 작업입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이번 달 콜로키움은 발표자의 1회성 연구발표에 그치기보다는, 콜로키움의 형식을 통해서 여러분과 대화하며 하룻 저녁의 대화가 보다 장기적인 페미니스트 공동 연구 모임으로 발전되는 희망을 낳는 밤이 되기를 바랍니다. 발표자 박미선은 전지구화 시대의 여성, 민족, 국가를 주제어로 페미니스트 국가 이론(feminist theorizing of state)의 방향을 모색하는 중이며, 1년 정도의 연구 기획 중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모쪼록 오셔서 여성, 민족, 국가에 대한 여러분의 경험, 의견, 지식을 생산적으로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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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민족, 국가, 그리고 정체성


옛날 그리스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터져 버려라! 그것이 무엇이든 터질 것이로다! 
나는 내 태생을 알아야겠노라. 내 태생이 아무리 비천한 것일지라도 
나는 내 기원을 직접 내 얼굴로 보아야겠도다. 
그녀는 아마도, 여성의 자부심을 지닌 그녀는 
내 태생으로 굴욕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 나는 스스로를 운명의 여신의 아들, 
위대한 여신이자, 모든 좋은 것들을 내려주는 여신의 아들로 치노니, 
나는 결코 스스로로 인해 부끄러움을 보지 않으리라. 그녀가 나의 어머니노니! 
그리고 달들이 내게 표식을 내렸으니, 나와 혈연을 나눈 형제들이여, 
한 달이 이지러져도 다음 달이 힘차게 솟아오르는 법, 
이것이야말로 내 피요, 내 본성이다. 나는 결코 이를 배신하지 않을 것, 
내 태생을 찾아내 아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라. 


근현대적 의미의 민족이 탄생하기 이천 년도 넘게 이전에 그리스의 작가 소포클레스의 희곡 외디푸스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쓰것다고 난리를 치는 장면이다. 저 위 대사는 남성적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런 만큼이나 외디푸스의 남성성은 타격을 입으며 타격을 입은 만큼이나 "우리"에게 인간적인 것으로 다가오도록 프로그램화된다.


외디푸스 이야기는 정체성에 관한 고통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자, 인간의 정체성이 자신을 낳아준 조상(ancestry)과 사회적 끈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야기로들 학부 수업시간에 가르쳐지며, 외디푸스 이야기는 아부지 죽이고 엄마랑 잔 남성의 이야기인지라 적어도 서구에서는 엄청나게 다양하고 복잡한 해석이 이루어졌던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살아남는 이야기들은 이렇게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언캐니하고 (그-와 언-은 너무나 친숙한 것들을 한순간 낯설어보이게 하는 짓에서 나온다) 우리들의 성적 무의식과 사회적 터부를 건드는 것들만이 세월을 견디며 유목하여 살아남는다. (평원에 먼지태풍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유목할 수 없다.)


민족주의에 관해서라면 종종 인용되는 주류 문헌을 "낳으신" 꼰대 학자 안토니 스미스 역시 외디푸스 이야기를 활용하면서 근대 민족/국민 정체성의 핵심에 혈연과 소속의 신화를 든 바 있다. 스미스왈:  외디푸스 신화는 "자아가 복수적인 정체성과 역할들, 즉 가족, 영토, 계급, 종교, 종족, 그리고 젠더로 이루어지는 방식을 드러낸다." (1991, 4)


외디푸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자기가 감히 아버지의 여자를 자기 아내로 꼬신 근친상간 아들이며 아버지를 살해한 패악범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드러내는 것은,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모든 정체성 찾기의 핵심을 구성하는 압도적인 방식이다. 그러니깐두루 '좋은' 아들, 남편,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외디푸스는 "훌륭한" 왕이면서 동시에 근친상간 패악아들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두가지 반응이 있다. 하나는 티레시아스의 예언이고, 다른 하나는 외디푸스 자신의 반응이다


티레시아스 
                                                                                      
너희들 생각에는 낯선 이지만, 너희들 가운데 살고 있는,               
그는 알고보니 테베[를 파괴한] 테베 원주민 태생이며                  
그렇지만 그는 이 사실을 알고나면 결코 기뻐할 수 없으리라  
눈이 멀어 이제 눈을 뜨고, [자신을 모르던] 거지가 이제 부유해져  
그는 외국땅에으로 자기 길을 가리라                                         
자기 앞에 한발짝 한발짝 지팡이를 두들기며.    
                                                                                            
마침내 밝혀졌으니, 자기가 마주안은 아이들에게 
형제이자 아버지였으며, 자기 어머니에게 
아들이자 남편이었으니, 그는 자기 아버지가 씨를 뿌린 음부에 
자기 씨를 뿌리고, 자기 아버지의 피를 엎질러 버렸구나!


외디푸스: 
나는 이런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버지의 살인자자 --결코 될 수 없으리라 
어머니의 남편이라니. 모든 남성들이 지금 나를 보누나! 지금 
신들의 미움을 받고, 내가 욕보인 어머니의 아들이 
아버지의 침대에서 뒹굴며, 그 음부에 생명을 뿌리고 
그것이 내 비참한 삶에 뿌려졌구나. 무슨 슬픔이 이 슬픔보다 클 수 있으랴? 
이것은 나만의 슬픔, 나의 운명. 나는 외디푸스다!


티레시아스의 예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눈먼자가 이제 눈을 가지고 거지가 인식의 부유함을 얻는 과정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자기 발에 도끼를 찍으며 낯선 땅으로 나아가는 "개척"의 과정으로도 묘사된다. 


외디푸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저질러온 일에 대한 고통스러운 개인적 인식은 "이제 모든 남성들이 나를 보누나!"가 시사하듯 사회적 문화적 결과들에 의해서 복잡해진다. 그는 "신들의 미움을 받는다." 그의 운명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아이들, 아이들의 미래, 나라, 미래의 아이들이 신들과 맺는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 정체성과 집단적 정체성은 매우 강렬하게 연결된다. 스미스가 외디푸스에게서 본 것은 개인적 집단적 정체성의 복잡성, 즉 자아를 만드는 복수적인 힘들이었다. 즉, "나"는 "우리"로 연결되는 바, 나에 대한 인식은 자아의 복수적 차원들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며, 자아란 항상 집단과 연결된다는 것. 


사실, 스미스가 간파한 대로 외디푸스 이야기는 정체성 구성과 자아 구성에 가장 핵심적인 힘들이 바로 젠더와 섹슈얼리티라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민족, 국민, 민족주의, 민족/국민 정체성에 관한 주류 문헌에는 바로 이 중요한 통찰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 혹은 청맹과니 마냥 쏙 빠져있다. 개인적 자아감과 경험이 집단적 민족 정체성의 발전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민족에 가정되는 동질성과 통일성 내부에서 다양성을 어떻게 거론하고 이론화할 수 있는가? 그라고, 젠더화된 분석을 통해서 이 주류 문헌의 방법론에 어떻게 반응, 도전할 수 있을까? 민족과 민족주의 연구에 젠더화된 분석은 어떤 이론적 함의를 지니는가? 

 

* 여이연 정기 콜로키움은 수요일에 진행되나 사정상 이번은 화요일에 진행하게 됨을 미리 숙지하시고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