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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여이연/단행본

[절판]여성괴물 - 억압과 위반 사이

저자 바바라 크리드 역자 손희정 여이연 2008.12.30

원제(The)monstrous-feminine : film, feminism, psychoanalysis

페이지 384 ISBN 9788991729117 판형 A5, 148*210mm

 책 소개

<출간의의>

바바라 크리드의 1993년 저작 <여성괴물>이 2008년 드디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관통하는 씨네 페미니즘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그 역사 안에서 차지했던 중요성이나 공포영화 연구 분야에서 이루었던 선구적인 작업을 생각한다면 다소간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이 여전히 ‘왜 영화가 여성주의의 관심사이며, 어째서 여성주의적 관점이 영화 안에서 중요한지를 보여주면서 씨네 페미니즘에 주목할 만한 공헌’을 한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지금이라도 이 책을 한국어판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씨네 페미니즘 자체가 영화학에 미친 중요한 영향을 생각한다면, 크리드의 영향 역시 ‘씨네 페미니즘’의 범주에만 묶여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크리드의 <여성괴물>의 작업은 매우 개척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크리드의 <여성괴물>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공포영화를 둘러싼 담론은 대체로 남성 괴물 대 여성 희생자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최초의 뱀파이어 영화이자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작인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에서부터 1930년대 유니버설의 공포물(<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해양괴물>, <투명인간>, <늑대인간> 등) 그리고 스튜디오 RKO의 <킹콩>에 이르기까지 대체의 괴물들은 남성이었으며, 거기에 여성 희생자는 흰자를 희번덕거리며 오르가즘을 연상시키는 신음소리와 괴성만을 질러댔다고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때 여성은 괴물이 정상인 남성으로부터 탈취하고 싶어 하는 욕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남성이 괴물을 퇴치했을 때 ‘아버지’로부터 받게 되는 보상으로만 존재한다고 분석되었다. 이런 비평 담론에 조금씩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그 때 여성 희생자는 남성 괴물과 ‘비정상적 육체’라는 유사점을 공유한 공모자로서 이해되었다. 이런 비평에서 괴물은 ‘남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뒤틀린 육체를 통해 성적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남성에게 공포를 준다는 의미에서 여성에 더 가깝다고 분석되었다. 그러나 이런 분석들도 충분한 분석 근거를 대지 못함으로써 큰 지지를 얻지 못했으며, 여성괴물 자체를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크리드의 작업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크리드의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는 힘없는 희생자의 자리에만 위치 지어졌던 여성이 드디어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사실 한국의 공포영화와 달리 할리우드의 공포영화에는 남성괴물이 꽤 많이 등장한다. 한국 공포영화의 ‘괴물’이란 언제나 긴 생머리를 늘어트린 ‘여귀(女鬼)’였으며, 1996년 <스크림>의 전세계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몇 편의 공포영화에서 남성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긴 하지만 처절한 상업적 실패 후 그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반면 할리우드 공포영화에는 상당부분 남성 괴물이 등장한다. 드라큘라나 늑대인간 같은 신체변형이 가해진 괴물들은 여성 공모자와의 유사점이 강조된다고 치더라도, 1970년대 후반 이후 끊임없이 등장하는 마이클 마이어스(<할로윈>)나 제이슨(<13일의 금요일>) 같은 청교도주의에 푹 빠져 섹스하는 10대만 골라 죽이는 미치광이 연쇄살인범 혹은 살인귀는 말 그대로 아버지의 법에 중독 된 남성괴물들이었다. 그러나 크리드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남성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공포를 만들어 내고 괴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가부장적 속성이었으며, 동시에 그렇게 존재하는 여성괴물을 보지 못하는 비평 담론의 또 다른 남성 중심성이었던 것이다.

물론 다소간 늦게 도착한 이 고전이 내재하는 한계 역시 명백해 보인다. 이미 여성과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범주 자체에 대한 질문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지 오래된 시점에서 ‘여성의 재생산 기능’ 혹은 ‘거세하는 자로서의 공포’를 이야기하면서 ‘여성괴물’을 논한다는 것은 다소간 환원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드의 논의를 좀 더 정치하게 읽은 사람은 생물학적 성을 둘러싼 본질론과 환원주의의 혐의가 곧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크리드의 비판은 이미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어떤 생물학적 범주를 정해놓고 그 위에 재생산과 남성적 상징계의 구성이라는 임무를 덧씌운 뒤 그것을 공포스럽게 구성하는 사회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따라서 크리드의 논의는 생물학적 성을 상정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성을 구성하는 사회의 편견을 둘러싸고 진행된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크리드가 구출하려는 것이 ‘(재생산이 가능한) 여성’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 부분에서 독자 각자는 물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크리드의 1993년 작업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내는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크리드의 논의는 그런 상상력에 무한한 가능성을 허용하는 열린 텍스트다.

<내용과 특징>

이렇게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던 여성괴물을 설명하기 위해 크리드는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을 경유한다. 책의 1부에서 크리드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비체’ 개념을 통해 여성괴물성을 추적했다. 크리드에 따르면 공포영화는 적어도 다음 세 가지 면에서 ‘비체화의 묘사’로 이해될 수 있다. 우선 공포영화는 즉 피, 토사, 타액 등의 육체적 배설물에 버무려진 온전하거나 절단된 시체들과 같은 비체적 이미지로 넘쳐난다. 두 번째로는 공포영화에서 등장하는 괴물성은 인간과 비인간, 선한 것과 악한 것, 젠더 역할의 경계 등 모든 경계를 허물고 위협한다. 마지막으로 공포영화들은 모성 이미지를 혐오스러운 것으로 구성한다. 그런데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이런 모든 ‘비체적’인 것들은 월경, 배변훈련, 주체가 확립되기 이전의 어머니와의 합일의 단계 등 어머니의 재생산성과 연결되어 있다. 가부장적 공포영화는 ‘어머니의 권위(비체)’와 ‘아버지의 법(주체)’ 사이에 대립구조를 형성하면서 아버지의 질서에서 떨어져 나와 어머니와의 합일의 단계, 주체가 형성되기 이전의 혼란의 단계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는 ‘기괴함/공포의 감정’을 선사한다. 여기에서 여성의 어머니로서의 기능, 즉 재생산성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이런 접근을 통해 <에이리언>, <엑소시스트>, <브루드>, <캐리>, 그리고 <악마의 키스>와 같은 작품들이 분석된다.

 

책의 2부는 프로이트의 거세 이론을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프로이트의 「다섯 살바기 꼬마 한스의 공포증 분석」에 등장하는 꼬마 한스의 사례를 재독해 하면서 크리드는 한스에게 거세 위협을 가했던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실제로 그 위협을 입에 담았고 ‘피흘리는/물어뜯는 신비로운 고추’를 가진 몸 자체가 거세하겠다고 위협하는 그의 어머니였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크리드는 여성은 거세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거세하기 때문에 두려운 존재가 되며, 이런 거세 공포 속에서 소년은 어머니에게 소급적으로 페니스를 부여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크리드는 이 논의를 통해 이런 남성들의 판타지가 거세하는 여성, 그리고 남근적인 어머니라는 여성괴물을 만들어 낸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거세하는 여성, 팜므 카스트리스가 등장하는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와 <자매들>, 그리고 남근적인 어머니가 등장하는 <사이코>가 이 맥락 안에서 재독해 된다. 이렇게 크리드는 크리스테바의 ‘비체’ 이론에 기대고 프로이트의 거세 이론을 비판하면서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했던 여성괴물을 언어화한다. 그 순간 여성괴물이 내포하는 억압의 징후를 포착하고 또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등장하며, 동시에 그 안에서 어떤 위반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 소개
바바라 크리드
여성주의의 관점으로 포스트모던 문화를 분석하는 것에 집중해 온 바바라 크리드의 학문적 관심은 공포영화, 페미니즘, 그리고 정신분석학이다. 그녀는 프로이트와 크리스테바의 영향 아래 현대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둘러싸고 구성하는 공포의 본질을 분석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그 결과물이 1993년 발표된 『여성괴물』이다. 이 저작에서 크리드는 프로이트를 비판하고 크리스테바를 인용하면서 가부장제에 의해 기획된 여성 이미지의 본질을 파헤치는 날카롭고 또 놀라운 시선을 보여준다. 이외의 주요 저작으로는 『Media Matrix: Sexing the New Reality』, 『Phallic Panic: Film, Horror & the Primal Uncanny』 등이 있으며, 스크린Screen, 뉴 포매이션New Formation 그리고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같은 세계적인 잡지에 기고해 왔다. 그녀의 저작은 독일어, 스웨덴어, 폴란드어, 일본어, 그리고 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되어 전 세계 학자들과 만나고 있다.

손희정
근대화와 IMF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집단적 무의식에는 가부장제에 근거한 뿌리 깊은 가족 로망스가 존재한다는 고민 아래 이 사회가 제공하는 공포의 스펙타클을 파헤치던 중 여성이론연구소의 작은 지붕 아래에서 바바라 크리드를 만났다.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과 한국사를 공부하고,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실천하는 시네페미니스트가 되고자 노력 중이다. 석사 학위 논문 「한국의 근대성과 모성재현의 문제: 포스트 뉴 웨이브의 공포영화를 중심으로」는 영화 마니아로서의 공포영화에 대한 애정과 현대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로서의 고민이 함께 녹아있는 연구 결과물이다. 공저에는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가 있고, 역서로 『공포영화, 그 매혹의 역사』를 준비 중이다.
 
 목차
1부 여성괴물의 얼굴:아브젝션과 모성

1. 크리스테바, 여성성, 아브젝션
2. 공포와 원초적 어머니:<에이리언>
3. 여성, 악령 들린 괴물:[엑소시스트]
4. 여성, 기괴한 자궁:<브루드>
5. 여성, 뱀파이어:<악마의 키스>
6. 여성, 마녀:<캐리> 

2부 메두사의 머리: 정신분석학 이론과 팜므 카스트리스

7. ‘꼬마 한스’에 대한 재고 혹은 ‘어머니의 위협적인 고추’에 대한 이야기 
8. 메두사의 머리: 바기나 덴타타와 프로이트의이론
9. 팜므 카스트리스: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자매들>
10. 거세하는 어머니:<사이코>
11. 메두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