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1% 위한 자본주의 체제는 가부장제 있었기에 존재 가능”
‘성이론’ 펴낸 고정갑희 교수
임신과 출산을 ‘인간 생산의 노동’이라 볼 수 있는가. “그럼 밥 먹는 것도 노동인가?”라는 질문을 만날 법도 하다. 최근 <성이론>(여이연)을 펴낸 고정갑희 한신대 교수(57·사진)가 자주 그런 반박을 들었다.
페미니즘 이론가·운동가로 활동해온 고 교수는 자신이 지향하는 이론을 개념부터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 책에서 “임신과 출산도 다 노동이다”라고 말한다. 지난 14일 서울 사당동 글로컬페미니즘학교에서 만난 그는 “사회가 임신을 노동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이를 신비화·자연화시키면서 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라고 되묻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신이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라면 저출산 대책을 내놓는 한편 낙태를 금지시키는 통제를 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여성이 10개월 동안 임신 과정을 거쳐서 출산하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대책들이라는 것도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임신은 한 부분의 얘기다. 그는 “생각의 축을 ‘성’으로 옮겨보면” 여성의 ‘노동’이 보인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만을 축으로 보면 상품생산의 관계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비롯해 남성의 노동을 뒷받침하는 가사노동, 매춘과 같은 성노동 등은 흔히 노동과 생산이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이것을 생산이라 않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야만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것이죠.”
고 교수는 노동과 계급 중심의 마르크스주의적 문제의식과 성의 문제라는 두 축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고 말한다. 임신도 ‘노동’이라는 생각이 불편하다면, 성희롱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고당한 현대차 하청기업의 여성노동자를 떠올려봐도 된다. 고 교수는 “성희롱 사건이면서 노동문제”였던 이 사건이 “근로복지공단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면서부터 피해자가 복직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노동과 성문제의 연결점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가부장체제 혹은 남성중심주의를 문화적인 관점이 아니라 경제적인 관점에서 해체한다. 자본가가 노동자와의 생산관계에서 잉여를 차지하는 것처럼 남녀 관계에서 생산물을 누가 차지하느냐는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성관계라고 하면 흔히 ‘육체적 관계’만을 떠올리지만 고 교수는 이를 남녀 사이의 ‘거래 관계’로 재정의한다.
“그 거래는 계약, 매매 혹은 교환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충분한 대가가 오가지 않는 불평등한 거래라면 자본과 노동의 관계처럼 권력·계급관계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고 교수는 성관계, 성노동, 성장치라는 삼각구도의 개념을 만들어 이 가부장체제를 설명한다.
다만 그가 말하는 ‘성’은 여성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남성중심주의만 공박하고자 하기보다 이성애중심주의도 되짚어보자는 것이다. 책 제목이 ‘여성이론’이 아니라 ‘성이론’인 까닭이다. 이 지점에서 오늘날 세계적 경제위기를 돌파할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 고 교수의 생각이다.
“1%를 위한 자본주의적 체제는 가부장체제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지나친 의무를 부여받은 남성들은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1%에 진입하려고 버둥댔습니다. 여성들은 ‘왜 1%에 들지 못하냐’며 가담했죠.” 결국 사회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가 따로 가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2000년대 후반부터 일궈온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글로컬페미니즘학교는 이러한 실천의 일환이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자기실현이나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자는 권리담론으로만 흘러가서는 안됩니다. 남성과 같은 권력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가부장적 구조가 변화할까요? 경제적, 성적 감성부터 바꿔나가야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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