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신간] 공포 영화 통해 여성성을 다시 읽다
여성괴물 보지 못한 남성중심 비평 담론에 일갈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바바라 크리드 지음/ 손희정 옮김/ 도서출판 여이연/ 17,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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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톱을 든 살인마와 비명을 지르며 쫓기는 여자. 수많은 공포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장면은 '남성-괴물'과 '여성-희생자'의 전형적인 도식을 재생산해왔다. 여기서 여성은 (괴물인) 남성에 의해 희생되거나 또 다른 남성에 의해 구원받아야만 하는 수동적이고 가녀린 존재로서 다루어져 왔다.
이 같은 영화 속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당시 사회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비단 공포영화가 아닌 다른 장르물에서도 이런 도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킹콩>(1933)을 들 수 있다. 영화에서 아름다운 여성은 압도적인 체구와 힘의 소유자인 '남성-괴물'(킹콩)에 의해 일방적으로 감금되고 희롱당하며, 때로는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다. 킹콩의 손 안에서 미녀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남성)관객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도구이자 그 자체로 가부장제 사회의 성적 판타지가 된다.
로라 멀비로 대표되는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이 같은 영화 속 남근중심적 관점에 대한 비판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즉 영화 속 여성이 보여지는 방식이 철저히 남성 관객의 볼거리를 위한 '대상화'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성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한 느낌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분석 대상이 주로 전쟁영화나 서부영화 같은 남성적 장르에 치중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후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여성담론의 방향을 멜로드라마로 전환했다. 이즈음 등장한 것이 <여성괴물>의 저자 바바라 크리드가 빚지고 있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기호학적 정신분석 비평이다.
수많은 연구가 공포영화를 다루고 있지만 괴물로서의 여성을 언급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연구는 남성 괴물의 희생자로서의 여성만을 강조한다. 여기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왜 괴물로서의 여성은 여성주의 연구에서 무시되었고 공포영화에 대한 분석론에서도 배제되어 왔을까. 저자의 관심 또한 이로부터 비롯되며, 동시에 기존의 여성주의적 분석 담론과도 차이를 두게 된다.
크리드는 이제까지 힘없는 희생자의 자리에만 머물렀던 여성이 '괴물'로 다루어지는 영화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이코>(1960), <엑소시스트>(1973), <캐리>(1976), <브루드>(1979), <에이리언>(1986) 등이 그것이다. 크리드는 크리스테바의 '비체'(abjection) 개념을 통해 공포영화에서의 '여성-괴물'을 뒤쫓는다.
비체는 사람들이 자기 몸속의 것이면서도 그것이 일단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그것을 비천한 것으로 여겨 타자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주체는 자신의 몸에서 나온 것을 비위생적이고 터부시함으로써 자신의 정상성을 지킨다. 크리드는 이러한 관계를 공포영화 속 여성 괴물을 통해 다시 밝혀낸다.
하지만 크리드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남성 괴물의 대립항에 있는 여성 괴물 자체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역시 여성이 공포를 일으키고 괴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가부장적 속성에 있다. 이는 동시에 그때까지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 괴물을 보지 못했던 남성중심적 비평 담론에 대한 일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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