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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여이연/서평

경향신문에 실린 <주디스 버틀러 읽기>

주디스 버틀러 읽기 

제도화된 여성학, 성찰과 꼬집기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는 이상(李箱)의 자기분열적 세계 속에서 비틀거릴 뿐이지만, 사회에 의해 박제가 되어 버린 타자들의 날개는 임옥희의 <주디스 버틀러 읽기:젠더의 조롱과 우울의 철학>(여이연)에서 비상을 꿈꾼다.

 

이 책은 '진지한 철학을 조롱하는 철학의 타자'라 불리는 버틀러의 생각을 소개하는 형식을 띤다. 하지만 그 실질은 버틀러만큼이나 타자화된 저자 자신의 목소리로 충당된다. 버틀러에 기대어 제도화된 여성학의 바깥 혹은 '제2의 여성학'을 몽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섹스와 젠더와 욕망에 대한 사회구성이론부터 시작해서 근친상간, 동성애, 포르노그래피, 폭력과 애도 등을 다룬다. 자연적 질서라는 인식 속에 숨어 있는 허위의식과 폭력성을 근본에 이르기까지 질문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강제되는 성적 정체성이 젠더일따름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그녀는 이를 투쟁의 정치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 기반을 둔 국가나 친족, 이성애 등의 규율들을 극단까지 몰고 가 해체하고 조롱하는데 주력한다. 다양한 페미니즘의 목소리들은 어느 하나의 범주로 구획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국가 자체의 폭력성은 물론, 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을 벌였던 우리 페미니즘 진영부터 '21세기의 진보'를 규정하고 범주화하려는 이 시대의 조급증까지 뚜렷한 성찰점을 제공한다. 국민을 죄인으로 호명하는 국가에 국민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하는 자가당착을 조롱하는 것이 버틀러의 이야기라면, 제도와 범주의 바깥에 놓여져 있음 자체가 윤리적 정당성을 제공한다는 저자의 언술은 섣부른 경계지움의 위험에 대한 엄숙한 경고가 되기 때문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2008. 11. 18 일자 경향신문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