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한우리, 김보명, 나영, 황주영 외 | 여이연 | 2018.08.20
페이지 187 | ISBN 9788991729360 | 판형 규격외 변형
기획 취지 | ||
이 책을 기획하며 떠올렸던 말은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받지만 모두가 억압을 받는 것은 아니며 억압의 정도가 균등하지 않다”는 벨훅스의 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은 어떤 식으로든 성차별적 언행과 성별위계적 일터의 관행, 매일 같이 보도되는 데이트폭력, 불법촬영, 여성을 향한 폭력과 여성들의 분노에 응답하지 않는 사법정의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억압은 모든 면에서 완전히 같지는 않으며 우리가 느끼는 고통 또한 서로 다를 것입니다. 이는 여성으로서 우리의 요구도, 정치화를 위한 전략도, 해방의 비전도 각기 다를 것임을 암시합니다.
여성으로서 겪어 온 우리의 경험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언어화하는 일은 중요한 변화의 첫걸음이자 페미니즘의 귀중한 자원입니다. 한때 페미니즘 운동이란 각자가 상처입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경험을 넘어서는 페미니즘 이론 고유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샬롯 번치는 이론이란 그저 사실들의 집합체거나 개인적 의견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유용한 지식과 경험에 기반 한 설명과 가설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론은 우리의 경험과 관점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그러한 ‘대안적 지식’에서 나온 이론은 다시 우리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아야 할지 통찰력과 언어를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이 글들은 모두 2018년 겨울,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진행된 겨울강좌의 내용을 다듬어 옮긴 것입니다. 한우리, 김보명, 나영, 황주영은 서로의 수업에 참여하고 미완성의 글들을 돌려 읽으며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여러 질문을 던져주신 수강생 분들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패트리샤 힐 콜린스의 말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청자를 필요로 하며, 그러므로 관계를 형성하기 마련”임을 다시금 일깨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일은 그 자체로 완결된 행위가 아니라 듣는 이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며, 이는 둘 사이에 새롭고 다른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책의 내용 이 책에서 소개하는 ‘교차성 페미니즘’은 미국 주류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어왔던 흑인여성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것에서 시작해 대안적인 지식체계이자 인식론으로 성장해왔습니다. 교차성 이론은 인종뿐 아니라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 민족, 이주상태, 장애여부, 시민적 권리와 같은 차이와 억압의 축이 맞물려서 권력과 지배가 작동하는 방식과 구조를 다룹니다.
여기 교차성 페미니즘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건네기 위해 네 명의 저자가 모였습니다. 한우리는 1960년대 후반 미국 유색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더듬어가며 이들을 재위치화, 재역사화할 때 그들 경험이 갖는 다른 의미가 포착되고, 기존과는 다른 대안적 관점과 지식이 생성됨을 설명합니다. 1968년에 있었던 인공임신중절 합법화 논의와 강제불임수술 근절논의, 가사노동과 공사영역 분리, 여성을 향한 폭력 등의 페미니즘 의제를 특정 시대와 공간에 얽힌 인종과 젠더, 계급의 문제와 함께 고려할 때 ‘여성’의 문제란 ‘남성’과의 관계 뿐 아니라 특정 ‘인종’ 및 ‘계급’이라는 권력관계 안에서/통해서(in and through) 구성되는 관계적(related)인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김보명은 교차성이 여성들 내부의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누가 더 억압되었는지를 밝힌다든지 혹은 단순히 여성들의 ‘다양성’을 강조함으로써 차이의 정치학을 중립화하는 데 그 목적이나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교차성은 억압의 복잡성(complexity)과 그 안에서 행위자로서의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저항의 역동성을 그려내는 데 유용한 분석의 관점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페미니스트 분석의 범주로서의 ‘젠더’와 페미니스트 실천의 주체로서의 ‘여성’을 지속적으로 문제화하고 역사화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여성’은 고정불변의 범주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살아내고 실천하는 정치적 정체성이자 저항의 위치성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 저항은 초역사적, 초문화적 억압의 기제로서의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반복적 투쟁이라기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억압과 차별을 그 경제적, 문화적, 역사적 관계망 속에서 분석하고 그려내고 싸우는 작업이라고 소개합니다.
나영은 페미니스트들이 처음으로 제기했던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여 페미니즘과 교차성 이론, 퀴어 이론, 적녹보라 패러다임이 나오기까지의 문제의식과 관점의 변화를 짚어봅니다. 글의 흐름을 따라 논점을 짚어가다 보면 각각의 이론이 서로 별개의 것이거나 배타적인 이론이 아니고 서로 문제의식을 진전시키고 확장해 온 과정에서 형성되어 온 것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분석하고, 은폐되거나 드러나지 못했던 문제와 주체들을 드러내며, 다른 세계를 향한 행동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황주영은 여성에 대한 폭력, 억압, 착취, 지배가 동물에 대한 지배 구조와 유사하며 가부장제와 인간중심주의, 자본주의, 이성애중심주의, 식민주의 등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며, 상호작용하면서 강화됨을 강조합니다. 이 글은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의 영역에서 여성과 동물에 대한 통제 방식의 유사성을 밝히고, 이 유사성을 구성하는 논리 구조와 관념, 경제 체계에 대한 에코페미니스트들의 분석을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교차성이 여성의 경험을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이며, 새로운 사회를 구상하는 정치학으로서 페미니즘이 여성처럼 타자화된 이들과 연대하는 방법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추천글 이 책은 지금 여기 다양한 여성 의제를 걸고 싸우는 우리가 어느 지점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여기 실린 네 편의 글은 교차성 페미니즘의 기원과 발흥, 이론적 진화의 역사, 핵심개념, 쟁점, 활용방법 등을 자세히 논의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 시민권, 나이, 학력, 장애유무 등 여러 권력구조들이 어떻게 서로 맞물리며 서로를 강화하며 작동하는지를 규명한다. 우리가 그 복잡성을 정교하게 인식할수록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바꾸어낼 힘을 키울 방법을 발견하며, 동시에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 역시 우리만의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현재의 삶과 상황을 바꾸고 싶은 이들을 고립된 세계에서 불러내 따로 또 함께 하는 즐거운 연대의 세계로, 신나는 재발견과 재구성의 세계로 인도한다. -박미선(한신대 영문과/페미니즘 이론)
이 책의 저자들이 밝힌 당대 페미니즘이 교차성과 연대의 정치학을 중요시하고 있는 이유는 매우 정확하고 단순하다. 교차성이 여성의 경험을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교차성 개념은 여성들이 개별 남성과의 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점을 가시화시키는 현대 페미니즘의 중요한 이론적인 자원이다. 여성들이 자신을 남성과의 관계에서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 내 존재로 스스로를 생각하면 여성들 간의 차이는 적대가 아니라 당연한 조건이 된다. 강연록이 가진 생동감과 전달력이라는 장점을 충실하게 살린 책이다. 네 명의 저자들은 각각 교차성 페미니즘은 여성과 여성 아닌 것을 섞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분법 안에 갇혀 남성의 타자로 존재했던 여성을 해방시키려는 기획이라는 점을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권김현영(여성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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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 ||
한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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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
서문_한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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