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16.11.30 | 저자: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편집부 |
책 소개 | ||
이번 35호 기획특집의 제목은 “싸우는 여자들”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한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들의 의의와 성과를 되짚어 보면서 치열했던 그 역사를 소환하고, 지금 이 순간 펼쳐지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의 한계를 넘어 페미니즘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고자 하였다. 기획회의를 하면서 편집위원들이 주목한 것이 ‘계보’와 ‘연대’였는데 광장에 나가면 이 말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계보와 연대는 두 가지 지점에서 나오게 된 말들이다. 여기에는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 터진 둑의 물처럼 쏟아져 나온 목소리들이 이전에 이미 시작된 목소리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동시에 그 목소리들이 외롭지 않기를, 도처에 ‘우리’가 있음을 알기를, 그리하여 도처에서 우리가 ‘함께’ 하고 있음을 알기를, 그러니 결코 힘 잃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된 기획이지만 서로에게 참조가 되어줄 만한 아주 소중하고 훌륭한 글들이 모였다.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지그재그로 교차읽기를 해도 흥미로울 것이다.
기획특집을 연 미류의 글, 「밀양과 강남역 10번 출구–그녀를 소개합니다」는 2011년부터 시작된 밀양 초고압송전탑건설 반대투쟁, 일명 ‘밀양 싸움’에서 공사 저지를 위해 매일 산을 오르내리며 싸웠던 ‘할매’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노년여성들은 길 없는 산에 길을 내며 현장을 점거했고, 공사 차량을 몸으로 막았고, 경찰병력을 몸으로 뜯어냈으며, 움막의 살림을 도맡아 했고,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고, 연대를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대접했고, 움막 안팎을 청소했고, 무대 위에서 노래를 했고 또 연설을 했다. 그야말로 이들은 ‘모든 것’을 했다. 필자는 이 ‘할매들’을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여성혐오 살인사건에 분노해 모인 ‘젊은’ 여성들의 ‘스승이자 친구’로 조우시키고 싶어 한다. 두 번째 글인 유경순의 「투쟁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할매들’과 ‘젊은 여성들’의 삶이 정확히 어디에서 만나게 되는지를 예시하고 있다. 유경순은 이 글에서 1997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고용방식인 비정규직이 어떻게 특히 여성/노동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재능교육교사 여성노동자 투쟁, 광주시청 청소용역 여성비정규직노동자투쟁, 이랜드 여성노동자투쟁, 홈플러스 여성노동자투쟁, 대구동산병원 환자식당노동자투쟁, 기륭전자 여성노동자투쟁 등을 통해 세세하게 보여준다. 이 중 어떤 싸움은 승리한 싸움으로 끝나지 못하기도 했지만 이 싸움에서 싸운 이들은 ‘여한이 없이 싸웠고 수많은 연대와 관심, 그리고 지지를 받으면서 여성노동자의 힘, 연대의 힘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밀양 싸움’을 이끈 ‘할매들’도 했던 말이다. <리포트> 꼭지에 실린 이지행의 글, 「이대 본관 점거시위 리포트」를 이 글들과 교차읽기하면 흥미로울 것이다. 이지행은 공적 복지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마땅히 기댈 곳도 없이 생존경쟁 일로에 몰린 청년 여성들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해 온 공정한 경쟁과 경쟁 결과의 공정성마저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분노가 이대싸움의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하면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싸움 과정에서 청년 여성들이 얻게 된 연대의식에 주목하고 있다.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에서 낸 책 기록되지 않은 노동에 대한 서평인 이해진의 「노동이 필요한 곳 어디에나 여자들이 있었고/있다!」와 문은미의 논문 「여성의 경력단절과 고용불안-30대 여성노동자의 경력단절 경험을 중심으로」도 앞의 글들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글들이다. 이해진은 『기록되지 않은 노동』이 ‘야쿠르트 아줌마, 행사도우미, 고속도로 톨게이트 여성노동자, 호텔 룸메이드, 보조출연자, 시각장애인 안마사, 방과후 교사, 산모도우미, 대리기사, 운동 강사 등과 같이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여성노동자들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에 시선을 기울인다. 문은미의 글은 여성노동문제가 논의될 때 항상 등장하게 되는 경력단절의 문제가 사실은 경력단절 문제라기보다 처음부터 차별적인 형태로 구조화된 노동시장 형태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성들이 주로 진입하게 되는 일자라는 근속기간이나 경력, 소득이나 승진 문제와 연결되지 않는, 이미 불안정한 일자리 형태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경력단절이라는 문제 틀로써가 아니라 차별적인 노동시장 구조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성폭행’ 피해자를 넘어 성적 자기결정권의 주체로 나아가기 위해 직시해야 할 현행 법률상 ‘성폭행’의 개념과 적용」은 성폭행 피해자에서 성폭행 사건을 다루는 법률가로 거듭난 이은의 변호사의 글이다. 제목에서 적시하고 있듯이 필자는 ‘성폭행’ 범죄를 현행법상에서 제대로 응징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성폭행이 아닌 다른 차원의 차별 혹은 폭력 문제로 다뤄져야 하는 사안을 성폭행과 제대로 구분해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적어도 법률상에서는 적극적으로 옹호되고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권리를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은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이나 ‘리벤지 포르노’와 같은 범죄들이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일상적인 두려움을 안고 살도록 만드는 가운데 이에 대한 대응이 자칫 자기검열이나 성적 순결주의 혹은 피해자성에 대한 과도한 집중으로 귀결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참조하며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이현지의 논문 「음란물로서의 BL 인식과 그 수용자에 대하여」는 남성들 간의 동성사회적 관계를 동성애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창작행위와 그 결과물인 BL을 향유하는 여성들에 대한 시선에 주목한다. 이현지는 여기에서 이러한 시선이 어떻게 남성의 승인과 이성애중심주의 규범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이은의의 글과 나란히 읽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레즈비언 포르노물을 소비하는 이성애자 남성들과 BL을 소비하는 이성애자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 어떻게 교차하거나 어긋나는지를 생각하면서 읽어본다면 성적 자기결정권 발휘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이은의의 글이 갖는 의의와 현실적 한계가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배상미의 글 「‘혐오’를 딛고 ‘승리’로 나아가는 여성들」은 ‘메갈리안’이 얌전하고 수동적이며 의존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여성이라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남성의 일방적인 성적 대상이 되거나 성폭력과 혐오의 피해자이기를 거부하고 미러링과 직접행동이라는 전략을 펴면서 ‘권리를 가질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이라고 독해한다. 배상미는 메갈리안을 소라넷 폐쇄와 성범죄자 처벌을 경감하려는 개정안 채택 저지 그리고 임신중절 시술 의사 처벌 강화법안 재검토 요구 등을 하면서 법 외부를 법의 이름으로 보호하라는 역설적인 요구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사례로 읽고자 한다.
<페미니즘 사용설명서> 꼭지에 실린 고윤경의 글 「여성전용공간」은 이런 메갈리안의 활동 공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텍스트다. 고윤경은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을 소개한다. ‘여성은 지금까지 수세기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두 배로 확대 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지닌 거울이었다. 만일 여성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다면, 거울 속의 형체는 오그라들 것이고 삶에 대한 적응력도 감소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자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침해당하는 데 항의’하고 있다. 이런 때에, 울프에 따르면,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세계에서 사는 여성들은 적대적 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면서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을 가져야 한다. 이 공간은 ‘여성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길러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거점’이다. <리포트> 꼭지에 실린 달리의 「손 함께 잡고, 목소리 더 크게–농촌여성과 페미니즘」과 류진옥의 「불편한 일상 수상한 익숙함–제17회 제주여성영화제」도 각 글 자체가 전하는 흥미로운 내용과 함께 ‘여성전용공간’이라는 맥락 안에서 읽어도 흥미로울 것이다.
<여성이론가> 꼭지에서 마사 누스바움을 소개한 임옥희의 글 「마사 누스바움: 인문학적 상상력과 정치적 감정」은 임옥희의 저서인 젠더 감정 정치에 대한 서평인 김경연의 글 「다시, 도래할 페미니즘을 위한 정동의 정치」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각 글이 다른 글에 대한 더욱 풍부한 이해를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문화/텍스트> 꼭지에 실린 김은하의 글 「늙은 여자의 시간과 주체화: 노희경의 <디어 마이 프렌즈>」는 앞서 말한 모든 글들과 함께 어우러진다. 제목에 등장하고 있는 한 드라마에 대한 비평글인 이 글에서 김은하는 이 드라마가 여성들의 우정과 나이듦에 대해 섬세하고 애정어린 동시에 날카로운 시선을 들이대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동시에 이 드라마가 ‘가난한 조손가정’의 가장인 빈곤노인여성의 현실을 슬쩍 소외시키면서 ‘자식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는 경제력을 가진 세련되고 정결한 중산층 노년의 삶이라는, 우리 시대가 허락한 노년의 상’을 그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문화/텍스트> 꼭지에 실린 구번일의 「꿈 꿔야 싸울 수 있다–<서프러제트>와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와 <리포트> 꼭지에 실린 나영의 「‘지금’ ‘여기’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미래」는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그것을 현재의 흐름을 살피며 연결시킬 수 있게 도와주는 텍스트들이다. 이 글들은 특히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어떻게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연결되고 있으며 그 해결책을 위한 싸움이 어떻게 서로를 응원하는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번호 <페미니즘 라이브> 꼭지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박근혜를 ‘순결하고 희생적인 여성’이라는 기표로 만들어 아버지 박정희의 유산을 계승하려 했던 가부장적 젠더체계와 이에 기생하는 경제, 정치, 사법 권력 카르텔이 만들어낸 사건”으로 천명한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박근혜 퇴진을 넘어, 다른 세상을 향한 페미니스트 비체 시국 선언」을 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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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 쓰고 대안문화를 만들며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로운 시대의 이론적 패러다임을 만들어 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연구자들의 모임이다.여성문화이론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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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
<기획특집> 싸우는 여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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