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제91차 콜로키움
<방법으로서의 BL: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탈자연화하기>
BL(Boys’ Love) 문화는 그간 ‘10대 여성들의 성적 판타지 공간’, ‘여성들의 역능과 주체성을 보여주는 집단 문화’ 등으로 페미니스트 해석이 기입되는 장이었으나 2015년 이후 대중화된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자정’의 대상이자 반페미니즘의 지표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2019년 전후 ‘급진’ 페미니즘 실천의 일환으로 등장한 ‘탈BL’ 운동은 BL이미지에 여성이 없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이를 ‘존재를 지우는 최고의 여성혐오’로 규정했다. 이러한 담론의 변동은 보는 주체보다 ‘보여지는 주체’가 페미니스트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음을 뜻한다.
불법촬영부터 N번방과 리얼돌까지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여성 피해자 주체성을 정치의 축으로 삼아 온 페미니스트들에게 여성을 ‘어떠한’ 형태로 보여지게 만들 것인가는 어려운 과제로 다가온다. 여성으로 위치지어지고 표지된다는 것이 곧 남성중심적 관점에 입각한 ‘젠더론’이라면, 이러한 표지들을 모두 제거하고 ‘여자가 아닌 사람’이 되고자 할 때 그 ‘사람’은 보편인간의 지위를 점유해온 남성과 동일한 범주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성이길 거부하면서 여성임을 재현해야 하는 모순적인 기획은 ‘디폴트 여성’이라는 ‘몸 이미지’의 형태로 구체화되고, 추구된다. 디폴트 여성은 남성이 보편이던 세계의 설정값을 바꾸는 것을 넘어, 여성 주체들이 가시성의 장에 어떻게 자신들을 가시화할 것인가에 관한 개념과 이미지를 제공한다. 디폴트 여성-되기의 기획이 탈코르셋 운동이라면, 디폴트 여성을 지키는 기획은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여성서사의 추구 등으로 행해진다.
이와 같은 반복적 실천들이 드러내는 것은 디폴트 여성이라는 몸 이미지가 주체 스스로의 물질성을 직시함으로써 곧장 얻을 수 있는 생물학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과 정치적 서사를 경유하여, 부단한 배제와 타자 만들기를 통해 비로소 힘겹게 주체의 몸 자체가 된다는 점이다. BL이 퀴어한 장르라면 그것은 BL이 남성 동성애를 재현하거나, 퀴어한 욕망을 투여할 수 있는 서사와 이미지를 제공하거나, 실제 퀴어들이 이 장르를 향유해서일 뿐만 아니라, 주체성 구성에 ‘트러블’을 일으키고 여성 범주를 불안정화하며, ‘비남성의 연대’를 구축하는 텍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탈BL에 관한 반론은 ‘여성 문화’를 전제함으로써 여성의 자연화를 반복하기보다 이 지점, BL이 자극하고 가시화하는 퀴어한 욕망들에서 출발해야 한다.
발표: 홍보람(연구노동자)
일시: 2021년 5월 6일(목) 저녁 7시 30분
장소: 온라인 줌
신청: 신청폼 작성 후 제출, 참가비 무료(5월 5일(수) 밤 11시 59분 신청 마감)
02-765-2825, gofeminist10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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