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어두운 힘 [2010.03.19 제802호]
[월요일 독서클럽]
일자리를 잃은 남자의 ‘완전한 죽음’ 그리고 살인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불안도 힘이 된다. 그것은 어둠의 힘이며, 그 에너지는 불온하다. 극대화된 불안의 힘에 영문도 모른 채 교살당할 수밖에 없었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윤용호 옮김·민음사 펴냄) 속 여자 매표원처럼.
연극 <관객모독>의 희곡작가로 더 잘 알려진 페터 한트케의 이 소설 작품은 1970년대에 발표됐지만 요즘 독자에게 더 와닿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소설에서 불안의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대신 그저 불안에 처한 한 인간을 보여준다. 요제프 블로흐, 꽤 유명한 골키퍼였던 그는 건축공사장의 조립공으로 일하던 어느 날 자신이 해고됐음을 알게 된다. 해고 통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 현장감독의 눈빛 하나로 자신이 해고됐음을 눈치채고 그 자리에서 공사장을 떠난다. 블로흐는 경솔한 행동을 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눈빛 하나가, 손가락질 하나가 한 인간을 사회적으로 매장할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블로흐는 감독의 눈빛에 의해 자신의 사회적 삶이 다시 한번 죽었음(축구 선수로서의 사회적 삶 이후)을 실감했을 것이다. 블로흐의 사회적 죽음과, 남은 삶을 좀비처럼 살아내야 하는 자로서의 불안, 이것은 축구 경기에서 키커의 삶과 골키퍼의 삶으로 대변되는 듯하다. 사실 골키퍼야말로 축구 경기에 온힘을 쏟으면서도 축구공과 가장 멀리 떨어진, 축구공을 함부로 다룰 수조차 없는, 내부 속의 외부에 속하는 자가 아닐까. 그래서 작가는 소설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골키퍼는 공이 라인 안으로 굴러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골키퍼가 역할을 할 때는 공격수들이 수비진을 뚫고 골대 안으로 공을 차 넣으려고 할 때다. 특히 페널티킥이 시행될 때는 많은 관중의 집중 조명을 받는다. 나는 평소 페널티킥이야말로 불합리한 경기 룰이라고 생각했다. 페널티킥이란 공격하는 키커와 수비하는 골키퍼의 일대일, 그러나 불평등한 대결이다. 그럼에도 키커가 공을 골인시켰을 때는 상대편 점수가 올라가지만 골키퍼가 그 어려운 수비를 하더라도 자기 편의 점수가 올라가지는 않는다. 경기장 내부 속 외부로서의 골키퍼 지위. 이것이야말로 우리 현대인이 처한 불안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비유하는 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세계라는 거대한 축구경기장에서 공격수와 수비수가 휘저으며 공놀이하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골키퍼가 아닐까.
경기장에서 축출되고, 건축공사장에서마저 축출된 블로흐가 사회적 삶을 되살기란 매우 어려운 듯하다. 모든 것은 그에게서 등 돌리고 있다. 아내도, 자식도, 경찰도, 호텔 문지기도…. 언어들은 단절된 채 무의미한 독백만 부딪히며, 세계는 마치 극장의 불이 꺼지듯 그렇게 블로흐로부터 절연된다. 완벽한 죽음이다.
그는 할 일 없이 거리를 거닐고 극장을 기웃거리며 언어유희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극장 매표원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그녀를 목 조른다.
자, 블로흐는 어찌하여 그녀를 교살했는가? 작가는 살해의 원인을 밝히지 않은 채, 그저 그날의 상황만 보여준다. 그녀는 첫째, 일자리를 잃음으로써 이미 죽임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블로흐에게 ‘일’을 하러 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한다. 둘째, 그녀는 블로흐의 마지막 자존심의 근거인 언어놀이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버릇이 있다. 그녀는 블로흐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강박과 분노를 불러온다. 불안의 거대한 어두운 힘이 그녀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필자의 적극적인 해석이다. 그렇다고 나약한 여자를 살해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 되진 않겠지만.
상대 선수의 페널티킥을 좌절시킨 골키퍼에게 점수를 주지 않듯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을 그럴듯한 세상이라고 호도하는 지금, 사회적 시스템의 외부에 존재하는 자들의 불안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고 그 불안감이 거대한 어두운 힘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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