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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여이연/서평

[뉴스1] 호러물 속 '여성 괴물'에도 여성 혐오가 깃들어 있다

[새책]바바라 크리드의 '여성 괴물'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7-02 10:28 송고

 

© News1

가부장제때문에 공포영화에서조차 여성은 주변으로 밀려났고 모성 이미지는 혐오스러운 것으로 그려져 왔다며 여성학적 관점에서 공포영화를 들여다본 책이 나왔다. 최근 호주 맬버른대의 영화학 교수 바바라 크리드의 1993년 저작 '여성 괴물'(여이연)은 수년전부터 불어온 국내의 페미니즘 바람에 힘입어 개정판으로 재출간됐다.

크리드의 책이 등장하기 전 서구에서 공포영화를 둘러싼 담론은 남성 괴물 대 여성 희생자의 구도였다.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투명인간' '늑대인간' 그리고 '킹콩'에 이르기까지 괴물들은 대체로 남성이었고 여성은 괴물이 탈취하고 싶은 대상, 그리고 남성이 괴물을 퇴치했을 때의 보상물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원초적 어머니를 상징하는 우주 괴물이 나오는 '에일리언', 악령들린 소녀가 주인공인 '엑소시스트', 마녀같은 어머니와 딸의 '캐리' 등은 '괴물'로서 강한 존재감을 가진 여성 주인공들이었지만 그 '여성성'과 '괴물성'은 함께 긴밀하게 분석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90년대에 들어서서 크리드는 "공포영화가 여성을 희생자로만 묘사하거나 모성 이미지를 혐오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그 이유를 "남성들이 아버지의 질서에서 떨어져 나와 모성과 합일하는 것이 어린시절 자신의 주체가 형성되기 전의 혼란의 단계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머니가 시킨 배변훈련의 경험, 어머니의 생명을 창조하는 힘 등이 기괴함과 공포의 감정을 선사하기에 어머니의 재생산성과 관련된 것들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또 정신분석학에서 거세를 행하는 자는 보통 아버지의 형상으로 그려졌으나 크리드는 사실 아이에게 거세공포를 주는 것이 엄마라고 지적한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성교를 하는 동안 질이 남근을 깨물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이빨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인 '이빨 달린 질'(vagina dentate)이 그런 공포를 반영한 것이라며 남성이 여성에게 느끼는 공포심의 본질이 '여성에 의한 거세의 공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책 전반에서 크리드는 남성 괴물을 부정하고 여성 괴물의 우위를 주장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라고 한다. 크리드는 여성이 공포스럽고 괴물같은 존재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사회의 가부장적 속성을 지적하고 동시에, 존재했던 여성 괴물을 보지 못한 남성중심성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처녀 귀신, 영화 '여고괴담'의 여고생 귀신들, 홍콩 할매처럼 할리우드와 달리 대부분의 괴물이 여성인 우리 문화에 대한 고찰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바바라 크리드 지음·손희정 옮김·여이연·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