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지사항

박근혜 퇴진을 넘어 다른 세상을 향한 페미니스트 시국선언

<페미니스트 비체 시국 선언>

우리는 나라를 바꾸는 계집, 나라를 바꾸는 페미니스트 비체들이다. 

우린 웬만해서는 선언 같은 거 안 한다. 확신을 주는 말들이 얼마나 주술적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한 번 쯤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권력이 소용돌이치고 있기 때문이다.

만천하에 드러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대통령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박근혜를 “순결하고 희생적인 여성”이라는 기표로 만들어 “아버지 박정희”의 유산을 계승하려했던 가부장적 젠더체계와 이에 기생하는 경제·정치·사법 권력 카르텔이 만들어낸 사건이다. 그런데 비판의 목소리는 가부장적 권력 카르텔이 아닌 여성비하로 점철되고 있다. 이 사건을 “한낱 여성”의 문제로 치환하여 비난하는 비판세력의 목소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변호하기 위해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운운하는 유영하 변호사의 발언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페미니즘에 무지한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비판세력이 여성혐오라는 감정의 정치를 더 이상 동원하지 말 것도 요구한다. 우리는 집회에서의 여성비하 발언을 더 이상 보고 있지 않을 것이며, 성추행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박근혜 정권이 가부장적 권력 카르텔에 기반하고 있음에 무지한 사람들은 반격을 할 것이다. 간만에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페미니스트들이 훼방을 놓는다고 할 것이다. 우리에게 “뭣이 중요한지” 모른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으며, “작작 좀 하라”고 욕할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들을 전선을 교란하는 더럽고 위험한 “비체”로 지목하여 혐오할 수도 있다. 잠시만 기다리면 다음 권력이 알아서 페미니즘적인 정책을 펼칠 텐데 제발 잠시만 “가만히 있으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 가만히 기다렸던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수사적인 여성정책과 여전한 말본새였다. 이건 어떤 정권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권력은 집중되는 순간 페미니즘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게 가부장적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은 응집된 이후에는 부패한다. 하여 권력은 지금과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순간 분산되어야 한다. 그러니 할 말이 있다면 지금 하자. 권력은 만들어 진 후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분산되어야 한다. 그 누구든 나쁜 권력으로 만들지 않으려거든, 지금 말하자.

우리는 지금까지 권력 비판의 장에서 함께 춤추었다. 우리는 “낙태죄 폐지” 집회 이후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청계광장까지 갔다. 그러니 한 번도 우리가 춤 출 때 함께 하지 않았던 저들에게 우리는 말할 자격이 있다. 뭣이 중한지 몰랐던 건 우리가 아니다. 선 권력, 후 분산의 논리 속에서 맹-페미니즘적 말실수에 대해 반성할 능력조차 없다면, 박근혜 정권 퇴진에 연대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오히려 비난의 화살만을 날린다면, 그런 자들에게는 권력을 주지 말자. 누구든 이의제기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로 인해 자신이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는 나약한 자아를 가졌다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다. 

누구에게 권력을 나누어 줄 것인가는 우리의 손 안에 있다. 물론 우리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은 한계를 갖는다. 자기 확신과 완전성을 전시하기 위하여 맹-페미니즘적인 실수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이 아니다. 이는 자신이 비판하는 그 권력과 똑같은 권력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누군가를 선택해야한다면, 자신의 가부장적 한계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을 지지하자. 페미니스트란 다른 게 아니다. 가부장적 권력 카르텔이 만들어낸 우월적 남성성, 착한 여성성의 모습을 벗어나 이에 균열을 내는 비체(abject)임을 선언하는 사람이다. 더럽고 위험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가부장적 카르텔을 지키려는 자들이다. 나라를 바꾸는 것은 바로 우리 계집, 우리 페미니스트 비체들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하지 말자. 알고 보면 저들은 우리를 좌지우지할 만큼 강하지 않으며, 우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가 아니다. 우리가 힘없이 당하기만 한 피해자임을, 저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가해자임을 강조하면 할수록 저들은 강해지고 우리는 약해진다. 여성비하와 성폭력은 저들이 강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약해서 하는 짓이다. 폭로전은 그들이 얼마나 강력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대수롭지 않은가를 드러내는 게 핵심이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11월 26일 2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낮은 계단 페미존에서 세상을 바꿀 페미니스트 행동을 함께 선언합시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도 참여해 아래의 선언문을 낭독할 예정입니다.
11월 26일 2시 여이연의 드레스코드는 보라색입니다.
페미존 앞에서 만납시다~!